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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민아 Sep 20. 2020

까치

얼마 전 신문에서 ‘까치가 가장 골칫거리’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까치가 집을 지을 때 물어다 쓰는 철사나 쇠젓가락 같은 금속이 합선의 원인이 되어서 정전사고의 주범인 까치의 수를 줄이기 위해 퇴치 작전에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까치는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 친근하게 지내온 새이며 사람과도 쉽게 사귀어 동양권에서는 까치가 울면 반가움을 준다 해서 ‘길조’라고 명명하고 있지 않은가.     

  

까치는 비둘기와 더불어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집 근처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까치를 볼 때마다 들 까치가 아니라 집 까치처럼 느껴져서 마치 가축인 듯 착각하기도 한다. 아카시아 포플러 나무 등 활엽수가 줄지어 서 있는 우리 마을에는 까치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사철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지나는 동네길 어귀에서 까치와 시선이 마주칠 때 눈의 교감으로 무언의 대화도 나누곤 한다. 산란기 철인 봄에는 어느새 지었는지 둥근 모양의 둥우리 까치집이 높은 가지 위에 올라앉아 있어 마치 하늘이 품고 있는 집인 양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까치는 대한민국에서 ‘국조’라는 작위를 받고 나라의 상징적 새로서 격조 높은 대접을 받은 지 꽤 오래되었다. 신라 시대부터 전설로 이어 내려온 까치설날. 구정 설 전날인 섣달 그믐날을 까치 설이라 부르고 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윤극영 님의 이 동시는 어린이들에게 밝은 희망을 품게 해주는 국민 동요가 되어 있다. 요즘에는 새해 연하장 주고받는 일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새해 첫날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마을 위로 까치가 날아가는 그림의 연하장을 받으면 마치 행운을 실어다 준 듯 기뻐했다.


“깍깍깍,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지.”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동시 ‘아침 까치’는 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애송해오고 있다. 소박한 가슴으로 읊조리는 이 시는 지나간 세월이 엮어간 많은 이야기를 추억해 주고 있다. 


까치는 전설 속의 은혜로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음력 칠월칠석날 까치가 세운 공로는 우리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게 해 주었고 두 연인은 오작교 위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 눈물 세례 때문에 지상의 우리는 후줄근히 옷을 적셨다. 칠석이 지난 다음 날에는 머리 벗어진 까치가 어디 없는지 찾아다니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있다.        


지나는 길목 지붕 위와 나무 위에서 깍깍 울어대는 까치는 반가운 소식과 좋은 일을 예견해주는 배달부이기도 하다. 까치는 나에게 몇 번이나 행운의 뉴스를 안겨주었다. 오래전, 외출하면서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까치 한 마리가 아파트 복도 위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깍깍 울며 후다닥 내게로 날아온 적이 있다. 그날 오후에 나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수상 소식을 받았다. 그 날 까치가 나에게 안겨주었던 미묘한 행운의 메시지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느 날은 아침 산책길을 걷던 중 길가 나무 위에 몰려 앉은 까치 떼가 내 머리 위에서 합창하듯이 깍깍 퍼부어 울어댔는데, 그 날 우리 큰아들이 직장에 임용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과연 까치는 나에게 희망의 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적, 바람 느슨한 여름 한나절. 고향 집 사랑채 마루 끝에 걸터앉아 건너편 밭두둑을 바라보다가 길섶에 늘어선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매달린 듯 걸려있는 까치집을 발견하곤 했다. 그 안의 작은 세계가 궁금하여 상상의 나래를 폈던 시절이 지금도 자주 그려진다. 까치집은 거센 바람과 몰아치는 눈비에 파손되지 않고 호시탐탐 노리는 적을 지키기 위해서도 탄탄하게 지어야 한다. 집을 지을 때 까치는 강한 나뭇가지와 접착성이 좋은 찰흙 등 견고한 재료만을 골라서 물어온다. 선별하여 가져온 건축 자재를 주둥이 부리로 촘촘하게 엮어 정성으로 공사하면 완벽한 건축물이 탄생한다. 에미 애비 힘을 합쳐서 공들여 꾸며놓은 아늑한 스위트 홈에서 봄이 되면 예쁜 자식이 태어난다. 지나가던 송이 구름도 힐끗 쳐다보며 비껴가는 작고 동그란 오두막집이 그곳에 있다.


앞뒤 가로세로 하늘을 꽉 막고 우뚝 서 있는 아파트의 행렬에 질려 숨이 막힐 때,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키 큰 나무 꼭대기 위에 오붓하게 들어선 까치의 둥지를 쳐다보면 매양 부럽기만 하다. 하늘을 실컷 볼 수 있는 집이 내가 제일 살고 싶어 하는 곳이기에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일부 농민들은 피해액을 운운하면서 사람까지 고용하여 까치 잡기에 나서고 있고, 잡은 까치는 바로 소각장 행이라고 한다. 까치가 전봇대 위에 집을 짓지만 않았더라도, 사람의 몫인 농작물 곡식에 침 흘리며 넘보지만 않았어도 선량하고 정직한 까치마저 화장터로 가야 하는 까치의 수난 시대는 오지 않았을 텐데. 사람과 까치는 한동네에 사는 마을 친우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살거운 이웃사촌인데. 체면을 상실한 채 국조의 위신이 격하된 까치를 구제해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다.    

  

내일 아침 산책길에서 만날 까치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심심한 위로의 말로 달래주어야 하나? 매를 들고 호되게 꾸짖어야 할까? 내 꿈의 집인 까치집은 여전히 하늘 가까운 곳에 동그랗게 자리하고 있는데. 


- 인민아 수필집 "소심 소심 소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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