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에의 집착

by 임미리

"너는 노래방 가수야."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그에게 본인이 그렇게 잘났으면 나를 한 번 가르쳐 보라며 오기를 부렸다.


단 한번도 노래를 누구에게 배운적도 없고, 무식한놈이 성낸다고 잘 하지 못하면서 이리저리 자존심만 부리고 살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내려 놓는 순간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목소리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학생이 하루에 얼마나 연습하냐라고 물으면, '글쎄, 난 하루 24시간 연습했어.'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꿈꾸는 그 순간에도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꿈을 꾸고 있었으니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터 잠들기 까지, 발성을 하며 내 숨을 소리를 찾아 내 몸을 탐구했다. 공명이라는 것, 비브라토 (떠는 음), 고음, 저음, 중음, 목소리에 싣는 한 등 알면 알 수록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느끼고 그걸 알아가는 것이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고수가 성장해 가는 느낌이었다.


알고 싶은 목소리가 있으면 몇날 몇일이고 남자친구 귀에다가 때려박으며


"이거 맞아? 이쪽으로 내는거야? 이렇게 하면 어떤데?"

"미리야 제발 그만..."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 이거 맞아 아니야?"

"진짜 너 미친사람 같애."


결국 그 말을 듣고 말았다. 미친 사람 같다는 말. ㅎㅎ 근데 왜 그말이 그렇게 좋았을까? 더 듣고 싶었다. 나는 '소리'에 미쳤고, 파고 또 파고 계속 거기에만 집착하는 미친 과학자 같았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데블스 플랜'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시원 같았다. 그 모습을 몇 년간 유지 했으니 주변 사람들이 질색할 만했다. 결국 피스의 비밀을 푼 그녀처럼. 나 또한 목소리의 비밀을 풀고 또 풀었다.

각종 가수들의 소리를 분석하고 비교해 가며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 세상에서 그것 만큼 재미있는 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왜 노래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으며, 왜 떨리면 음이 흔들렸는지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목표했던 라이벌을 능가하는 소리를 낸 순간 (순전히 내 기준, 내 만족이다) 나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소리를 내다니! 내 목소리가 듣기 좋다니!"


마치 요리하는 사람이 '내 요리가 이렇게 미친듯이 맛있다니!' 하고 혼자 다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내 목소리들을 퀘스트를 깨듯이 먹어치워갔다. 모두 내 몸에 흡수하길 얼마 안 있어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성대결절.


고음에 너무 흥이 난 나머지, 쉬지도 않고 계속 해서 잘못된 길로 고음을 내질렀더니 생긴 일이었다.

내 목소리는 쉬어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울면 목소리가 잠길까봐 울지도 않았다. 이제 막 도약 하려는데 날개가 꺾인 어린 새 같았다.


나는 이리저리 방도를 찾아 마침내 수원에 음성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싱가포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려 '음성치료전문병원'이라니. 대한민국 만세다. 거기서 나는 내 성대 상태를 카메라로 보았다. 의사선생님께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선택지를 제시해 주셨다.


"성대에 보톡스를 맞든지,"


히익-!! 성대에 주사를 놓는다고? 미쳤어요? ㅠㅠ 머리가 쭈뼛섰다.


"아니면 발성을 배우세요."


여태 발성 배웠는데, 뭔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나중에 안 것이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배우는 순서를 거꾸로 배워서 생긴 문제였다. 기본기를 먼저 익혔어야 했는데, 기술부터 접근한 탓이었다.


"여기 병원 소속 성악가 선생님이 계십니다."


황국재 선생님. 지금도 잊어 버릴 수 없는 나의 인생 스승님이시다. 내 목소리의 기반을 만들어 주신 구세주였다. 선생님은 풍채가 굉장히 크셨고 인상이 매우 좋으셨다. 누가봐도 성악가였고 테너셨다.


황국재 선생님께 나는 성악 발성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서는 자세부터 입을 여는 각도, 시선의 위치, 손의 위치, 몸의 무게중심, 성대 자체를 조절하는 방법, 몸을 쓰고 성대를 보호하는 방법, 성대를 제대로 접촉하는 방법 등 그 모든것이


도레미파솔파미레도 (아-로 이 음들을 1키씩 점점 높여가며 부른다)


스케일 연습에 모두 들어있었다. 즉 나는 성악곡을 단 한곡도 선생님과 연습하지 않았다. 신촌에서 수원, 지하철에 버스로 갈아타고 다녀오는데 왕복 3-4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돌아오는 길 그리고 버스 안에서 그날 배운것들을 숨죽여 연습하면서 혼자 '이건가? 이건 아니지! 그래 이건거 같아! 맞아!' 하면서 절망하고 환호하던 순간들.


황국재 선생님께 딱 3개월 배운 뒤, 나는 처음으로 시흥시가요제에 출전하여 대회에 도전했고, 금상을 수상했다.


부족하지만 나의 성악실력이 궁금하다면 조금 전 포스팅 한 따끈따끈한 영상을 참고 해도 좋다.

정말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불러 본 성악 곡이다.


https://youtube.com/shorts/EdjyTMnUu58?si=qzdYtH2vlxTvRozn


총6개월 뒤, 황국재 선생님께서 지방으로 내려가셔야 했고, 나는 안타깝게도 거기서 멈출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께 배운 기본기와 남자친구에게 배운 스킬을 조합하여 나는 급성장 했다. 그리고 다음 스승님을 찾아 나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부족한 멜로디 응용, 리듬감을 찾아서

우리 나라 최고 재즈보컬인 말로(malo)선생님을 드디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께 또 충격을 받고 펑펑우는 일이 생겼다. 말로선생님의 이야기는 다음화로 넘기겠다.


아무튼 나의 이 집착과 광기 덕분에 나는 노래를 못하던 나. 남이 아무리 괜찮다 해도 스스로 인정 못하던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한 결과였다. 미친듯이 노력하고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다.


"잘했다."


물론 그 뒤엔 사족이 붙었다. "이것만 좀 더 잘하면 어떨까?"

나의 지나친 완벽주의가 집착과 광기로 빛을 받았던 시절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노력의 순간들이었다.


훗날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는 걸.



















작가의 이전글홍대 놀이터와 클럽과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