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되고 싶니 뮤지션이 되고 싶니? -말로 선생님

by 임미리

나는 정말 확확 변하고 있었다. 물만난 스폰지 같았다.

묵직하게 물을 쭉쭉 빨아들이면서 몸무게를 불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황국재 선생님께서 떠나신 뒤, 나는 정체되었다. 무언가 나에게 부족했는데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말로(malo)'라는 재즈보컬리스트가 한국에서 제일 재즈로 유명하고, 또 은평구의 동네에서 물푸레학당이라는 명목으로 그룹으로 재즈를 가르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겨울에 은평구를 찾아갔다. 은평구 마을은 신세계였다. 북한산 근처에 위치하여, 도시라기 보다는 한적한 시골읍내 같은 분위기였다. 하얗게 눈 내린 산 아래 모여있는 마을들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아직도 버스에서 내려 빙판길에 자빠져 엉덩이 무릎을 제대로 다친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물푸레라는 곳에 도착하여 처음 선생님을 뵈었다. '우와 연예인이다!' 이런 모습을 기대했지만

선생님은 까만 뿔테 안경에 검은색 코트를 입고 약간 짚시 같은 차림이셨는데 숲속에 사는 마녀 같은 이미지였다. 몰래 물약을 제조하는 그런 분위기,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선생님께 배우려는 사람들은 10명 남짓이었는데, 나처럼 20대 보다는 30대, 40대 재즈를 좋아하는 선생님 팬클럽 모임 같은 곳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잘 몰랐지만, 그들은 이미 선생님을 알고 추종(?)하는 무리 같았다. ㅎㅎ 나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지만 곧 알게되었다. 선생님께서 피아노를 치시고 노래를 하시는 순간 '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살아있는 한국 재즈계의 신화 였다. 한국의 엘라피츠제럴드 정말로 선생님.


나는 선생님께 처음으로 '스윙'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사실 선생님께 오기 전에 선생님께서 쓰신 '재즈싱잉의 비밀'을 완독했고, 거기에서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스윙 개념을 듣고 따라 해 보았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서 알려 주시는 게 확실히 와 닿았다.


스윙은 마치 그네를 타듯이 박자를 타는 것인데, 4박자를 기준으로 1,2,3,4 박 중에서 2박과 4박에서 좀 더 머무는 느낌이고 1박과 3박은 빨리 지나가는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의 강조점도 2박 4박에서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더 길게 늘리거나 그 박자에서 떠나지 않으려 하는 데에 있다. 그런 끈적함이 스윙이다.


이 스윙감각을 알기도 전에 나는 더 어려운것을 배우게 된다. 바로 '멜로디 페이크'라는 것이었다.

재즈는 정말 천재여야 할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바로 이 멜로디 페이크 부분이었다.

멜로디 페이크는 멜로디를 내가 창의적, 즉흥적으로 변형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작은 별' 노래가 도도 솔솔 라 라 솔 이렇게 멜로디가 배열되어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그대로 부르는 것은 클래식의 영역이고, 재즈는 마치 반항아 같았다.


작은별: 도도 솔솔 라시도라솔~


이렇게 변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변형을 해야 할지 모르고, 해 본적도 없는 나로서는 너무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단체수업이었기 때문에 세세한 디테일은 들어가지 않았고 매주 새로운 곡을 해 보는 식으로 훅훅 넘어갔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어느 날 선생님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게 된 날이 있었다.


때는 스승의 날 이었는데, 나는 선생님께 드리기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단체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가서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립니다. 이거 선물로 준비했는데 작지만..."


활짝 웃으며 내민 선물에 나는 싸늘한 대답을 돌려 받았다.


"저는 이런거 안 받습니다."


처음 당해보는 선물 거절에 나는 깜짝 놀라 굳어 버렸다. 호의를 이렇게 차갑게 거절당하다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는 벙쪄 있었다.


"아...네..."


항간에 선생님이 굉장히 강하신 분이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만큼 싫고 좋고가 분명하신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주지 못한 선물을 안고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걸 이해하게 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 였다.


나는 선생님을 새끼 병아리 마냥 가는 곳 마다 쫄래 쫄래 따라 다녔다. 선생님이 물푸레 다른 수업인 판소리를 들으신다 해서, 거기에 참여했다. 판소리를 배워본 적도 없었지만 선생님과 같은 제자 입장에서 판소리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니 그것 또한 너무 재미있었다. 한 5-6명 되는 소규모 그룹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사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말로 선생님은 그 강한 이미지에 걸맞게 아주 카리스마 있는 분이셨다. 신념이 강하셨고, 그것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당시 세월호 문제도 있었고 나라에 흉흉한 사건들이 많았는데, 선생님은 목소리를 내어 입장을 표명하셨다. 대개 정치에 대한 문제나 이런 것들을 쉽게 이야기 하지 않는데 선생님은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또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물 같은걸 받지 않으신다고 했다. 내가 마음상했을 까봐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 같았다.

제자의 선물을 거절하는 스승. 처음엔 당황스럽고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도 교생을 갔다와 본 입장에서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제자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서 좋아하고 고마워 하게 되면 그것을 본 다른 제자들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또 어느 날 선물 준 제자에게 칭찬을 하고 다른 제자에게 그렇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나의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해 주심으로서 선생님에게 무언갈 선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오래 관계를 맺을 수록 더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선생님은 나와 MBTI 가 같으셨다. 정확히는 내가 가진 2개 MBTI 중에 하나가 선생님과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선생님을 이해 할 수 있었고, 선생님의 가르침이 너무 가슴속 깊이 와닿았다. 스윙이나 재즈 기술 같은 것도 당연히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께 스스로의 신념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후 선생님의 단체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하며 신뢰를 쌓아왔고, 수업시간때도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조금 기초가 생긴 상태였다. 이제 개인 레슨을 받고 싶었다. 또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마음속에 있었다. '난 이런 사람은 안 가르칩니다.' 뭐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들을 까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선생님과 국악선생님과 다른 학생들과 함께 북한산 산행을 가고 가벼운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단 둘이 있게 된 순간 나는 선생님께 혹시나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실수 있냐고 공손히 여쭤보았다. 더 배우고 싶다는 열정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서. 이건 뭐 좋아하는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 보다 더 떨리는 순간이었다.

가까이 보이는 북한산 만큼 높아보이는 선생님의 성에 내가 초대 될 수 있을까.


"그럼요. 오세요."

"정말요?!"


나는 그날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없다. 그저 말로 선생님께 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세상을 다 가진 것 만큼 행복했다.


선생님께서는 레슨실을 알려 주시며 찾아와 보라고 했다. 은평구에 있는 학원에 선생님께서는 출강하고 계셨고 따로 개인적으로는 받지 않으신다 했다.

첫 시강 날, 나는 많이 긴장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일대일로 뵈니 아주 친절하고 더 멋진 교수님같은 분이셨다. 나는 원장 선생님께 수강 등록을 하고싶다 말했다.


"선생님께서 수강하시래요?"

"네, 뭐가 문제 있나요?"

"아, 시강 했다가 수업 거절 당하는 학생들이 많아서요."

"네? 네..."


역시 선생님은 아무나 받지 않으시는 구나. 그동안 단체 수업을 착실히 한 보람이 있었는지, 나를 받아주셨다. 나는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는 목숨을 걸고 무조건 익혔다. 정말 어려운 재즈였다.

엘라피츠제럴드의 스캣이 포함된 재즈 곡을 귀로만 듣고 한 번도 그려보지 않은 악보를 내가 박자부터 다 그려야 했다.


너무 어려워 헷갈리는 것은 수업 전 지하철에서 계속 고치고 고치고 듣고 고쳤다.


이때 재즈에 대한 감각이 어느정도 생겼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님께 배운 재즈 감각으로 탄생한 곡이

내 자작곡 인형극이었다. 이 곡은 MBC 현인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https://youtu.be/bluh4BezChE?si=6frRq-rF1_AVswSk


이 곡 외에도 줄줄이 곡이 튀어나왔다. 연달아 3곡을 작곡했다. 선생님과 함께 하며 나는 어느덧 점점 뮤지션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하며 나는 기존 나의 스타일에 재즈의 향기를 묻힐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 목표가 재즈가수는 아니었다. 나는 보다 팝에 가까웠고, 선생님은 완벽히 재즈쪽이셨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하셨다.


"미리씨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미리'라는 목소리에 언제나 공명을 가득넣어 바람처럼 부르시는 선생님. 나는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둘 다 할 수는 없나요?"

"없죠. 선택해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둘다 하시는 것 아닌가요? TV에도 출연하시고, 뮤지션으로 활동도 하시니."

"나는 음악에 관련된 TV에만 출연해요, 예능에 출연하는게 아니라. 그게 다릅니다."


아.

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나는 무엇이 되고싶은가?

여러분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지금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다. 만약에 예능에 출연할 기회가 생긴다면 할 것인가?]

뭐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어느것도 부끄러운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고, 성향에 맞는 길을 택할 뿐인 것이다.

지금 나는 유튜브에서 열심히 음악들을 올리고 있다.

또 앨범작업을 해서 6곡의 녹음을 마쳤고, 1곡이 마스터링까지 완성되었다.

곡을 발매하는 시기만 엿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내가 해 온 발자취는 뮤지션으로서의 발자취가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나에 대한 탐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아마 인생이 끝날 때 까지도 이 탐구는 끝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 싱가포르에서

아직도 멋지게 그 목소리로 노래하고 계신 나의 스승님 말로 선생님과

다시 만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때 또 다른 가르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하나, 행동하나, 목소리 한 음 한 음이 나에게는 모두 배울 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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