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법은 무엇일까.
스승님들을 통해 성장한 나는 공연과 관련된 사람, 관객들을 수 없이 많이 만났다.
내가 겪은 무례한 사람들의 사례도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것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 옷 벗어]
크리스마스 이브. 함께 공연하던 기타리스트 오빠의 부탁으로 우리는 연중 가장 핫한 그 날 저녁에 무료로 캠핑장에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 오빠는 공연하는 것 자체가 좋다는 모토였던지라, 공연비를 많이 주지 않아도 의도가 좋으면 공연을 서곤 했다. 나는 주로 행사비가 있는 공연만 했었지만, 이번만큼은 오빠의 공연을 돕고자 따라갔다. 그렇게 보컬 2명 기타 한명이 한 팀으로 간 공연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장비를 모두 지참해야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자 눈앞이 캄캄했다. 공연장이 야외일 줄이야. 지금 날씨는 영하 20도 였다. 노래하면서 들이쉬는 들숨이 날카로운 고드름 같은 그런 날씨. 이렇게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노래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나는 코트를 껴 입고 위에 잠바를 입었다. 그리고 캠핑온 관객들의 환호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공연 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나는 마치 산속에서 수련을 하는 판소리 명창이 된 것 처럼 도전정신이 확 생겼다. 이런 공연을 잘 해 낼 수 있다면 그 어떤 공연 환경에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다.
팀소개를 하던 나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듣게 되었다.
"프로면 옷 벗어라. 코트가 웬 말이냐~"
맨 앞줄에 앉은 여성관객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두꺼운 파카를 꽁꽁싸맨채. 지금 날씨가 마치 영상 20도가 되는 줄 착각하는건가.
나는 네? 이걸 벗으라구요? 했다. 농담식으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그 여성은 한 번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그리고 웃으면서 옷을 다 벗었다. 나에게는 안에 입은 흰색 남방 하나만이 걸쳐져 있었다.
지금도 그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내 목소리는 얼어붙어 있다. 과연 그 날씨에 얇은 남방 하나만 입고 그 목소리를 낸 내 자신이 대단했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요구를 그냥 수긍했고,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 행사의 주최자였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그 여성과 대화 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를 타박하거나 뭐라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무리한 요구였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것이 명백히 잘못된 행동임을 알리기 위해서. 그녀는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차분해 지고, 얼음처럼 차가운 가슴으로 얼굴은 활짝 웃는 것. 그리고 관계 정리.
이것이 내가 알게 된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어찌보면 답답했을 수 있지만, 때로는 나를 믿어준 사람의 입장이 얽혀 있을 때. 그 사람을 봐서 참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었다.
[같이 춤춰!]
공연중 무대 난입은 소규모 무대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특히나 어르신들과 술이 얽힌 그런 행사는 조심해야 한다.
전통시장에서 행사를 하는데, 한 아저씨가 한잔 걸친 상태로 무대에 난입했다. 나를 향해 직진하면서
같이 춤추자고 달려 들었다. 나는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표정은 웃고 있었다. 아저씨가 난입하자 괜히 무대 동선인 척 다른 곳으로 흥을 내며 걸어갔다. 다른 멤버들이 제지해 막아주었다.
이런 정도는 아주 가벼운 에피소드이다. 이제는 그냥 많이 신이 나셨구나. 내 노래가 그렇게 듣기좋으셨구나.그렇게 좋게 생각하려 한다. 팔 다리 꼬고 앉아서 흘겨보는 관객보다는 차라리 흥이 나서 나에게 달려드는 관객이 훨씬 났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그것에 대응하는 내 마음을 바꾸면 그저 한바탕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무대에서는 늘 안전사고가 있을 것이라는 대비도 항상 하게 되었다. 가수로서 노련함이 점점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일 조차 감사하다.
[난 니가 싫었어]
대학교때 부터 알던 친구를 우연히 9년 뒤 클럽공연에서 만났다. 그 애도 노래하고자 했던 아이였고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알고 보니 공연 주최즉이었다.
"야 너 대단하다. 이 뮤지션 정말 유명한데 너가 이런거 기획하는 곳에 있다니."
나는 호의를 표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술을 한잔 하고 나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난 니가 싫었어."
"어...?왜?"
"책도 안보는 애가 글을 쓴다고 설치지를 않나, 노래한다고 하질 않나. 그래서 좀 꼴보기 싫었어."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친구를 정말 똑똑하고 멋진 남자애라고 항상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애는 나와 나눴던 고민들을 가지고 나를 꼴보기 싫었다고 생각했다니. 허탈했다.
나는 물었다.
"아 그랬구나. 너는 음악 계속 해?"
"난 안하지. 내가 여기 일하면서 느낀건데 될 애들이 되게 되어있어."
"아 그래? 나 오늘 앨범 나왔어. 듀엣으로, 보사노바 곡이야 들어봐."
될 사람 안 될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지 난 그 애의 기준을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9년 전의 나는 감히 음악도, 글도 쓰면 안되는 그런 사람이었나보다.
하지만 니가 내 도전을 막을 수는 없지. 나는 그렇게 돌아섰다. 그리고 유튜브에 그 이야기를 했고, 그 아이는 또 내가 실력이 안되는 주제에 그런걸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오해가 아니라 본인의 편견을 어이없어 하는 중이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나는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내가 열심히 살고, 잘 살고 뭐 어떻든 간에 그걸 보는 사람들은 아니꼬워 할 수 있다는 걸.
입이 좀 더 무거워 졌다. 그러니 그런 무례한 친구들은 덜 사귀게 된 것 같다.
이 밖에도 행사장에 가면 별의 별 일이 생긴다. 무대에 선 가수를 노래방 기계라도 된 것 처럼 신청곡을 즉석에서 불러 달라는 사람들, 행사비를 마구 깎으려는 담당자들. 등등
그러나 나는 이런 무례한 일을 겪을 때 마다 생각한다.
'나는 그래도 이 길을 그만 두지 않을거야.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고 나의 교생 시절 '남성성기는 어떻게 쓰나요 선생님?' 사건을 떠올린다. 고등학생의 그 한마디에 교사라는 진로는 아예 포기해버린 임미리와 온갖 일을 다 당하면서도 웃고 있는 무대위의 임미리.
원하는 길을 걸을 때 무례한 사람을 피하기란 수영을 배우면서 물을 한 번도 안 먹으려는 것과 같다.
최근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눈 코 입 귀. 온갖 구멍에 다 물이 들어가서 고통스럽지만 나는 수영을 배울거다.
무례한 사람에게 당하지 않을 방법 또한 없다. 그들은 갑자기 들이닥치며 내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나를 모욕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웃으며 할 말하고 돌아서서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삼는 것이다.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대응이고 거기에 쓸 에너지로 내 성장에 힘쓰는 게 이기는 거다.
더 어릴 때는 머리카락을 쥐뜯든지 발로 차든지 한 번 싸웠겠지만 나이가 먹어갈 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본인도 본인이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 것이고
모르더라도 그건 자신의 그릇이며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걸.
각자 살아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