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못한다. 못해서 미치겠다.

by 임미리

노래는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타고 나는 것이다


이 세상 수천만개의 길 중에서 노래라는 길을 선택할 정도로 좋아해야 한다.

가장 우선순위에 그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타고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노래 하는 사람으로서 살 수 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계속 나를 시험대에 올려야 했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과 음악을 저울질 해야 했다. 늘 교사가 현실적, 직업적 등등의 이유로 승리했고

그것은 오래도록 이어졌으며 25살이 될 때 까지도 몰랐다.

가장 무거운 무게로 오래도록 그 몸체를 부풀려 온 것이 음악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까지도 지난 번 노래대회에서 기타치는 분이 하셨던 말을 수긍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입술을 뾰루퉁 하게 부풀렸다. 심통이 올라왔다.

'노래는 타고 나는 거 아닌가? 뭘 어떻게 더 노력하란 말이지?'


노래방. 그 충격의 장소


그동안 내 고향 왜관읍 시골 노래방에서 내가 노래를 했을 때 남자건 여자건 언제나 눈에 하트를 뿅뿅 드러냈으며,

'미리야 이것도 좀 불러줘, 이것도 좀 해봐 니가 이거 부를 때 너무 좋더라' 등등. 러브콜들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서울은 달랐다. 홍익대학교 흑인음악 동아리 브레인 스워즈는 대단했다. 모두가 가수였고 래퍼였다. 나만 찌글찌글 촌에서 온 못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들 발성이 좋았고, 랩은 귀에 꽂혔으며 퍼포먼스까지 훌륭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멋진 쇼를 구경꾼 처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질투, 시기, 분노 온갖 바보같은 감정들에 휩싸였다.

함께 하는 공연에서도 쭈글쭈글 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미 스타 같았고, 나는 마이크가 오면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냥 고음이나 내 지르는 그런 곡을 선택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학교 성적 떨어졌을 때 보다 노래를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화가나는지 몰랐다. 왜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고 속상하고 눈물이 나는지.

뭐가 이렇게 진 기분이고 왜이렇게 바보 같은지. 뭐가 도대체 그리 억울한지.


깊은 우물 속에 침전하는 기분

깊고 싶은 그 곳에 쳐박혀

하늘에서 두레박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건만 웅덩이 안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어두 컴컴 하기만 했다.

나를 놀리듯이 별들은 저 멀리서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나 빼고 모두 멋진 뮤지션인 것 같은 서울생활.

촌뜨기인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냥 노래말고 교사나 되자 (교사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을 뿐이었음을 밝힌다. 교사친구들이 많기도 하고 그들을 존경한다.)

그런 바보같은 생각들...


노래방은 쳐다 보기도 싫어졌다.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풀러 가는 공간이. 나에게는 대결의 장소에 스트레스를 불러 일으키는 공간이었으니까.

아마 예전 시골의 누군가는 나를 그런 눈으로 봤을 지도 모른다. 불현듯 그 사람에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하는 사람잘못이 아니다. 잘하는 사람을 보고 그런 생각에 빠진 사람 잘못이지. 못하는 사람 기분 맞춰주기 위해 일부러 못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또 다시 노래방


이 애증의 노래방에서 나는 결국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 후, 그렇게 기피하던 노래방에 결국 또 발을 들여 놓은 날이었다.


새로 만난 남친과 처음으로 간 노래방이었다. 그는 음악 전공생이었고, 보컬 트레이너 였다.

나는 그러든 말든 자신있게 그의 앞에서 노래를 했다. 학교를 졸업했으니 더이상 경쟁자도 없었고, 또 일반인들 사이에서 나는 굉장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상대적 우월감에 젖어 나를 모르던 시기.


결과는 처참했다.


열심히 노래를 하고 노래방을 나온 내게 만난지 일주일? 한달도 채 안된 그가 던진 말.


"미리야... 미안한데 넌 노래방 가수야."

"그게 무슨 뜻이야?"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마이크 없으면 니 노랫소리가 안들린다는 소리야."


두둥. 머리를 망치로 수천대 맞은 기분이었다. 결국 혼자 옹졸하게 쌓아올려놓았던 모래성이 바스라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 억울해 미칠것 같은 아이처럼. 그는 나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의 입에서는 절대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았다.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


울어도 소리 질러도 바뀌는 것 없었다. 나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했다. 인정해야했다.


나는 지금 노래를 못한다.


라는 절대적인 사실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까지 그렇게도 멀리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눈물을 닦고 오빠를 쳐다 보았다. 내 눈에는 독기가 서려있었음이 분명하다.

어린아이에서 껍데기를 찢고 탈피하는 고통을 지금 방금 맛본 그런 눈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오빠가 나를 가르쳐 봐."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스승님이 내 뜨거운 심장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나는 문을 부수어 맞이했다.

뜨거웠다. 미친듯한 열기가, 열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천둥번개가 마음속에 쿵쾅쾅 내리쳤다. 왠지 모르게 세찬 비바람이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냈다.

마음속에 이젠 더이상 바보가 아닌 내가 소리를 지르며 미친사람 처럼 웃고 있었다.


'나는 못한다. (심한욕) 그래 나 못한다 못해.

그래서 배울거다. 못하는거 알지만 배울거다.

배워서 잘 할거다. 누구보다 잘 해버릴거다.'


25살 가을 무렵. 그날이 가수 임미리로서의 첫 출발이었다.











작가의 이전글터무니 없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