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파병은 시리아였으면 좋겠다”

10년만에 그 말이 현실이 되다.

by Military Nomad

2012년, 나는 레바논 동명부대에 파병되어 정보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시절 시리아 내전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었고, 나는 매일같이 국경 너머의 상황을 정리하고 보고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어느 마을에서 공습이 있었다든지, 반군이 어떤 지역을 점령했다든지, 그 여파로 레바논 남부에 난민이 얼마나 유입되고 있는지 같은 내용들.


그 시기, 나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다음 파병은 내전이 끝난 시리아였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는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사실은 지도로, 사진으로, 활자로만 보던 그곳에 한 번쯤은 직접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이 현실이 될 거라고는, 그땐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나는 여전히 전쟁이 한창인 시리아로 파병되게 되었다. 종전 이후의 재건 현장이 아니라, 총성이 멈추지 않은 내전의 공간으로..


사실 처음 내가 지원했던 자리는 레바논의 유니필(UNIFIL) 참모자리였다. 하지만 유엔 본부에서 한국군의 UNDOF 파병 의사를 타진해왔고, 유엔대표부, 국방부 등을 거쳐 파병이 결정되었다.

한국군으로서는 처음 보내는 직책이었고, 기존의 어떤 임무보다도 갑작스럽고 생소한 자리였다. 무엇보다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 이런 이유와 유엔의 ‘여군 우선’ 정책이 맞물려 이미 과거 파병경험이 있던 나는 그렇게 골란고원으로 가는 UNDOF 최초의 한국군이 되었다.


레바논 동명부대에서의 기억 하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시리아 내전 관련 사진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폭격 직후의 마을, 시신이 덮이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는 골목. 현지 매체에 실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져서 내 옆자리 현지 통역인 ‘밥’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밥, 무슬림은 죽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아? 왜 이렇게 시체 사진을 막 올려?”

밥은 “아니야. 우리도 존중해. 원래는 이런 사진, 공개적으로 잘 안 올렸어. 그런데 분쟁이 여러 곳에서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감각이 무뎌진 거야.”

그 짧은 대화는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누군가의 죽음이 뉴스의 한 줄로 소모되고, 고통이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 그 풍경은, 또다른 분쟁지였던 레바논에 있던 내게도 어떤 흔적을 남겼다.

그런 마음이 남아서였을까.

파병지역을 바꾸자는 제안에, 나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흘려보냈던 한 문장.

“다음 파병은 시리아였으면 좋겠다.”

잊고 있던 그 바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 생각치 못한 방식으로 나를 다시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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