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글보다 늦게 올리는 프롤로그
2006년, 입대할 때만해도 군에서 나의 목표는 북한 전문가였다. 입대를 위해 굳이 안해도 되는 북한학 복수전공까지 했으니까..
학창시절에는 학원 선생님이랑 영어단어 외우기가 싫어서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고, 대학 시절에는 영어회화 수업이 너무 싫어서 수업을 반 정도밖에 안들어갔다. (그런거 치고는 그 시절에 토익셤, 텝스셤도 보고 하긴 했다) 호주로 이민간 친구가 "너도 외국으로 나오는게 어때?" 라고 했을때 "응? 나 법학이랑 북한학 전공했는데? 이걸 어디가서 써먹어?" 라고 할 정도로 ‘해외’라는 단어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인생이었다.
그런 내가 10여년 전 쯤 우연치 않게 파병을 다녀오게 됐고,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로 꾸역꾸역 살아남고 군대에서 (나름)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산다.
언젠가부터 지인들은 “이번엔 또 어디야?”, “지금은 한국에 있어?”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거의 대부분은 '한국이 아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역시 나는 한국이 아니다.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헤즈볼라 참전,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이스라엘-이란 전쟁, 의도치 않게 중동 격변의 한복판에 서 있다.
레바논, 인도, 파키스탄, 미국, 남수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독일, 시리아, 이스라엘…
군복 덕분에 쉽게 갈 수 없는 곳들을 돌아봤고, 각기 다른 공기와 온도, 사람들과 긴장을 마주했다.
처음에는 사진을 남겼고, 그 다음에는 기록을 했다.
지금은 그 기록들을 꺼내어 '이야기'로 풀어보려 한다.
순서는 조금 엉켰다.
이미 3편까지 써두고 나서야, “아, 프롤로그를 안 썼네?” 하고 생각났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이 나왔다. 말 그대로, 순서가 바뀐 프롤로그다.
기본적으로 모든 직업군인은 떠돌이다. 1~2년 안에 부대를 옮기는 생활. 사주에 역마살이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직업이긴 하지만, 이 시리즈는 역마살이 10대째를 내려오는건지 그냥 군인들보다 더 자주, 더 멀리 군복을 입은 채 떠돌던 어느 사람의 기록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시아, 분쟁, 그리고 그 안의 일상들.
화려하진 않아도, 드물고 낯선 경험들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고자 한다.
언제 또 떠날지 모르기에, 늦기 전에 쓰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는 ‘군복 입은 노마드’의 기록으로, 파병지별로 구분하여 하나씩 연재해 나갈 예정입니다.
현재는 골란고원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쓰고 있으며, 이후엔 레바논, 남수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예전의 이야기들도 차례차례 풀어볼 계획입니다.
외교와 안보, 전쟁과 평화,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군인의 시선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가끔은 웃기고, 가끔은 무거운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궁금해할 이야기라고 믿으며 한번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