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골란고원 (시리아) 가는 길

진짜 가긴 가는건가..

by Military Nomad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나는 그 전부터 파병을 준비하고 있었고, 임무단의 최종 출국일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전쟁 이전부터 파병 일정이 2번이나 바뀐 상태였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주변에서는 걱정이 쏟아졌다.

"안 가면 안 되는 거냐?"

"파병 취소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나도 혼란스럽긴 했지만, 공식적인 취소나 연기 통보는 없었고, 나는 정해진 준비 절차를 따라 조용히 출국을 기다렸다. 더불어 진짜 분쟁지역으로 간다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컸다.


이렇게 초조하게 출국일을 기다리던 어느 날, 임무단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시리아 측(정확히는 전 정부인 아사드 정권)에 제출할 ‘바이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예전 경험상, 일부 국가에서는 ‘정보장교’라는 표현을 우리의 8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첩보원’이나 ‘간첩’ 이미지로 받아들이곤 했기 때문에 최대한 ‘정보’를 덜어내고 주로 ‘분석업무를 담당한 장교’라고 단순화해 제출했는데, 그것 역시도 문제가 되었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전임자가 있었다면 조언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한국군 첫 파병자였고,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 순간, PKO의 전우애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레바논 서부여단에서 함께 일했던 아일랜드 동료가 현지의 아일랜드 대위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첫 파병자였던 지금은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동료를 연결해 주었고, 그 동료는 단호하게 말했다.

“보병이건 기갑이건 너 하고싶은거 하고, 정보의 흔적은 다 지워.”

그 조언대로 나는 바이오에서 정보를 모두 지웠고, 그렇게 나는 정보장교가 아닌 군생활 내내 평화유지활동과 군사외교를 전담한 장교로 시리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때 도움을 준 아일랜드 동료들과 아르헨티나 동료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물론 이 글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터.


실제 출국길도 쉽지 않았다.

임무단에서 일부 장비를 지급해 주긴 하지만 상태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나는 방탄헬멧과 방탄복 등 주요 장비를 직접 챙겼다. 이것만 해도 수하물 허용량의 1/3 이상이었다. 게다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헤즈볼라도 끼어들면서 레바논을 거쳐 도착할 내 DHL 박스들이 언제 도착할지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본 식료품과 생필품, 전투복과 전투화까지 모두 챙겨야 했다.

수하물 오버차지로만 20만 원이 넘는 요금을 냈고, 결국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하물 짐 중에 일부를 백팩과 손가방에 쑤셔넣고 파병가는 군인을 딱하게 봐 준 직원 덕에 무사히 짐을 다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카타르 항공을 타고 도하에서 환승하는 길은 거의 행군급.


그런데 출국 당일, 또 하나의 기막힌 일이 있었다.

한참 전 국방일보에 써 두었던 기고문이, 그날 실린 것이다. 당연히 전쟁이 날꺼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에, 임무단에 처음으로 전개되는 한국군으로서의 기대감과 각오 같은 것을 다지는 글이었다. 제목도 하물며 "'골란고원' 한국군 첫 참모장교 파병을 앞두고". 기다리는 와중에 전쟁이 터지면서 차라리 안 실리는게 낫겠다 싶었는데 하필이면 출국 당일, 동기의 메시지를 통해 기사 게재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일부러 출국일 맞추려고 기다린건가? 출국일정이 몇번을 바꼈는데 이건 어떻게 알고?”


기막힌 우연, 그리고 무거운 백팩과 함께, 나는 시리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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