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UNDOF 인가요..
2026년의 붉은 해가 떴습니다. 지난 8월 이후 브런치에 글이 뜸했습니다. 핑계 같지만, 저 역시 골란고원(UNDOF)에서의 2년 임무를 마치고 숨 가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사이 펠로우십 참가 차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국제 정세의 최전선을 목격했고, 지금은 한국으로 복귀해 중동에서 한반도로 스위치를 바꿔 적응 중입니다.
2025년 8월 기어코 UNIFIL의 해체가 의결됐다.
나야 UNIFIL 소속이 아니다보니 UNIFIL의 해체가 나랑 무슨 관련이나 있을까 싶지만,
유니필은 나의 첫 PKO 임무단이자, 두 번이나 파병을 다녀온 곳이다. 실제 체류 기간을 따지면 최근 다녀온 골란고원(UNDOF)이 더 길지만, 내 마음속의 '두 번째 고향'은 여전히 레바논이다. 게다가 UNDOF 임무를 마쳐가는 시점에 바로 유니필의 다른 직책에 지원서를 내밀기도 했었다.
결과는 '빨간불(탈락)'이었다(쳇!). 당시엔 아쉬움에 잠을 설쳤지만, 해체 소식을 듣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 이 난파선에 타지 못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던 걸까? 어쨌든 운명은 나를 그 현장이 아닌, 이곳 한국에서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했다.
유니필의 해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일명 MAGA,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 중동 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세가 굳어지면서 '유니필 무용론'은 급물살을 탔다.
여기서 평화유지군의 생명줄인 '위임명령(Mandat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엔의 모든 PKO 임무단은 안보리 결의안(Resolution)에 의해 창설된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예외(최초의 임무단인 UNTSO처럼 갱신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임무단은 1년 단위로 생존을 허락받는다.
매년 안보리 이사국들이 모여 "이 임무단을 1년 더 유지할까요?"라고 묻는 갱신 투표를 하는데, 여기서 상임이사국(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 단 한 곳이라도 거부권(Veto)을 행사하거나 승인하지 않으면, 그 임무단은 즉시 짐을 싸야 한다.
기술적으로 보면 해체는 아주 간단하고 차가운 행정 절차인 셈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이 갱신 투표는 거의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이번엔 그 '기계적 관례'가 깨졌다.
<Note: 임무단은 어떻게 태어나고 사라지는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PKO의 생과 사에 대해 잠시 설명을 덧붙인다.
시작 (Birth): 분쟁 지역에 위태로운 평화가 만들어지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로 임무단이 창설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필수 조건은 '주둔국(당사국)의 동의'다. 평화유지군은 점령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활동 중인 모든 임무단은 주둔국의 환영, 혹은 최소한의 동의 하에 만들어졌다.
끝 (Death): 보통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1) 임무 완수: 분쟁이 완전히 해결되어 더 이상 UN이 필요 없을 때. 가장 이상적이지만, 불행히도 현실에선 매우 드문 케이스다. 2) 주둔국의 퇴거 요청: 집주인이 "이제 나가달라"고 문을 열면 손님은 나가야 한다. 최근 말리의 MINUSMA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둔국 정부가 UN의 활동을 거부하면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명분이 사라진다.
문제는 이번 유니필 해체가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케이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은 "유니필이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못 하고 방패막이 역할만 한다"며 즉시 해체를 주장해왔다. 반면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유럽 국가들은 "중동의 마지막 안전핀마저 뽑을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방어막을 쳤다. 과거 아랍권에서는 반대로 "유엔 임무단이 이스라엘을 위한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고 비난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치열한 외교전 끝에 나온 결론은 '단계적 축소 후 2026년 말 전면 해체'라는 타협안이었다. 당장 내일 나가라는 최악은 피했지만, 사실상 시한부 판정을 받은 셈이다. (아일랜드군은 레바논 정부와 UN을 거치지 않은 별도 협정을 맺고 2027년 이후까지 잔류한다고 한다. 이는 'UN의 Blue Beret'가 아닌, '개별 국가의 군대'로 남겠다는 뜻이다. 다자주의(Multilateralism)가 무너지고 각자도생하는 국제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전 PKO의 직접적인 주체이자 이 주제로 석사를 받고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학자로서 이번 해체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사례가 PKO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유니필은 임무를 완수해서 떠나는 것도 아니고(평화는 오지 않았다), 주둔국인 레바논이 나가라고 해서 떠나는 것도 아니다. "너희는 무능하니 나가라." 주둔국도 아닌 '인접 적대국(이스라엘)'의 주장과, 그를 지지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의 압력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것이다.
이는 평화유지 활동이 더 이상 '중립적인 평화의 도구'가 아니라, '전쟁 승전국의 전리품'이나 강대국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 치워버릴 수 있는 장애물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8년부터 48년. 반세기 가까이 레바논의 언덕을 지켜온 Blue Helmet 들은, 결국 평화가 아닌 힘의 논리에 밀려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되었다. 레바논군보다 강력한 무장력을 가지고 있는 헤즈볼라는 여전히 레바논에서 활동하고 있고, 레바논은 여전히 위태롭다. 나의 두 번째 고향, 레바논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이 불길한 도미노가 나의 또 다른 임무지였던 골란고원(UNDOF)으로 넘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