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요 용사여!"
내일 눈을 뜨면 올해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는 친구들이 발표된다 (한국시간으로 오후쯤 날테니, 여기서는 아침). 재작년 임무단에 나오면서 사실 진급은 완전히 내려놓고 나왔다. 작년 진급 발표 때 공석이나 심의위원은 커녕 진급 발표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이집트 다이빙 휴가를 잡았는데 우연히 일정이 겹쳤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의 진급 발표는 나와는 크게 상관없음에도 작년보다 오히려 훨씬 긴장되고 관심이 간다.
작년 진급 발표 당시를 돌이켜보면 지금도 사실 좀 웃긴다. (교관을 하고 있던 후배와 동기는 너무 웃기다고 이 얘기 수업시간에 학생장교들한테 해도 되냐고 허락까지 받았다.) 이집트 홍해에서 일주일짜리 다이빙배를 타고 있었는데, 문제는 하필 그때 전파가 전혀 닿지 않는 바다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이다.
진급 발표가 있던 그날도 나는 망망대해에서 평화롭게 다이빙을 즐기고 있었다. 세상 파랗고 깊은 바다에서 망치상어를 만나고 '아 올해 내 운은 여기에 다 썼다.'며 신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급발표 일정을 앞두고서는 기분이 복잡해졌다. 물론 진급에 대한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다이빙 트립이 끝나가는 아쉬운 마당에 진급 발표 소식까지 들어야 한다니 기분이 꿀꿀해져서, 그날은 배에서 맥주 한 잔 하고 높아진 파도 때문에 침대가 디스코팡팡처럼 흔들리는 가운데 잠을 청했다.
전파는 이틀 후 새벽에서야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
휴대폰이 난리가 났다. 200개가 넘는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 문자, 부재중 전화까지.. 신호가 약하다보니 객실에서는 카카오톡 확인까지는 안되고 수신된 문자 정도만 확인이 가능했는데, 통상 진급에 비선되면 진짜 친한 선후배 동기들 위주로 위로메시지 10-20개? 정도 오고 마는데.. 엥?? 이거 뭐지??? 하다가 예전 레바논에 함께 다녀왔던 선배가 '진급을 축하합니다' 라고 보낸 문자를 보고 정말 놀랐다. "엥??? 뭐라고??? 이게 무슨.." 하면서 서서히 상황을 파악했다.
누군가는 진급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얘가 우울해하고 있나..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걱정해주기도 했고, 누군가는 진급했는데 왜 연락이 안 되냐며 애타게 찾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후배가 보낸 "일어나요 용사여"라는 메시지였다. '그동안 고생했다'라는 선배들의 메시지에는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감사 인사였다. 카톡을 확인하기 위해 급히 갑판으로 나가서 셀카 모드로 큰절 비디오를 찍었다. 그동안 도와주신 전 부대의 과장님과 선배분들께 보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허름한 반바지에 반팔티, 맨발로 큰절하고 총총총총 비디오 촬영을 끝내기 위해 걸어오는 모습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꽤나 웃긴 진급 인사였다.
대위 - 소령때는 당연히 1차로 진급할 줄 알고 카슈미르로 파병을 나갔다가 미끄러지고 2차때에도 파병지에 있던 터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카슈미르에서 진급이 되었고, 이번엔 한국에서 3차에서 안된 것을 확인하고 전역준비 할 겸 부대에 폐 끼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또 파병지로 나왔는데.. 또! 파병지에서 진급이 되었다. 이쯤되면 온 우주의 기운은 분쟁지역에 있나 싶기도 하고..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진급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파병을 다니면서, 다른 한국의 보직들을 마치면서 깨달은 것은, 진급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분쟁지역에서 보낸 시간들, 동료들과의 우정, 그리고 현장에서 쌓은 경험들, 선배들과의 전우애와 같은 것들은 계급장 하나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작년보다 더 긴장되는 건, 아마도 올해가 마지막 기회가 될 듯한 동기들과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이 좋은 소식을 들었으면, 그래서 남은 군생활을 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동안 고생했다' 던 선배들의 메시지처럼, 그동안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군에 기여했고, 가족과 개인의 생활을 희생시켜가면서 고생해왔다. 계급이 바뀌게 되든 아니든, 우리의 노력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대로 재미있게 군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라본다. 더불어 언제나 우리의 임무수행을 위해 혼자 가정을 돌보고 생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대부분은 또 역시 혼자) 이삿짐을 싸고 풀어준 가족들 역시 찬사받아 마땅하다.
내일, 누군가는 기쁜 소식을 들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쉬워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 오늘밤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그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