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모옴의 '인생의 베일'
"이 책은 내가 읽어본 인생작품이라니까."
명작을 접하는 건 쉽지 않다.
자칫 명작은 올드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선뜻 사놓고도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놀라운 경험을 했다.
서머셋 모옴의 '인생의 베일'을 읽었다.
심심풀이로 읽은 소설인데,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요즘 책을 읽으면 책을 펼쳐놓고 졸곤 했기에, 더 놀라웠다.
지금 읽어도 세련되고 흥미로운 서사.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멋진 문장과 대사, 읽고 반했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읽을 때만큼
감흥을 주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멜로 소설의 끝판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영하 소설가가 직접 번역까지 할 정도였으며 작가들이 강추하는 멋진 작품이다.
나는 '인생의 베일', '위대한 개츠비' 두 작품 다 재미있고 위대한 명작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미국 뉴욕 주라면 서머셋 모옴의 소설 배경은 영국 식민지인 홍콩과 중국이다.
서머셋 모옴의 필력은 이미 당대 독자들이 엄지 척하며 인정했다.
'인생의 베일'은 이미 2006년에 미국 할리우드에서 '페인티드 베일'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했을 정도로 투자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까. 사실 작품을 분석하는데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이미 고급 독자나 마찬가지다.
최소한 제작자, 영화감독, 스텝들이 '인생의 베일'을 읽고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여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영국의 세균학자 월터는 부인의 외도를 목격하자 부인을 데리고 중국 오지로 떠난다. 오지는 콜레라 균이 창궐했는데,
일종의 복수를 감행한 셈이다.
부부의 최소한 이성과 본능을 탐색한다.
"도(道),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부부에게 길이 있다지만,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걸었을까?
의문을 품었다. 읽고 난 지금도 두 사람 간 묘한 긴장이 잊혀지질 않는다.
남편 월터와 부정한 아내 키티는 외면하지만, 그 안에 뜻 모를 감정이 강렬하다.
사교계에서 젊은 날을 보냈던 영국 여성과 학문에 몰두하던 세균학자의 속내를 솔직하게 내비쳤기 때문이고, 그 속마음이 공감을 얻기 때문이리라. 월터의 사랑도, 본능에 따르며 살았던 키티도, 각자 감정에 충실했다. 갈등은 여기서 발생하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을 읽고 영화로도 확인하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소설과 영화는 다른 결말로 치닫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 감상은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소설의 여운을 감당할 수 없어 '페인티드 베일 OST'를 반복해서 들었다.
이영화 OST로 인해 내 방은 감성 카페가 되었다. 책 한 권으로 놀라운 주말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