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 할머니가 되자

담 넘던 그녀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by 이꺽정


누군가에게 보였다면 며칠 동안 이불을 뻥뻥 차면서 부끄러워할만할 일도 아무렇지 않게 내보일 수 있는 친구가 있다. 나의 허물 위에 따뜻하게 쓱 손을 덮어서 가려줄 것 같은 사람, 내 잘못이나 후회를 털어놓아도 가장 먼저 나를 다독여줄 것 같은 사람.

그 친구와 나는 이제 함께한 지 열 손가락으로는 한참 모자란 사이가 되었다.


지난주에 이제 백일정도 된 아기를 안고 우리 집에 들어서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시간이 언제 이만큼 흘렀을까, 언제 내 친구가 아기 엄마가 된 걸까,라고 똑같이 아기엄마가 된 내가 생각했다. 친구와 그리고 그 친구가 낳은 더없이 소중한 아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밤, 혼자서 살금살금 우리가 함께한 시절을 거스르며 추억에 폭 빠졌다.



중학생 시절 그녀는 못 말리는 말괄량이였다.

겁 많은 내가 아무리 말려도 훌쩍 담을 뛰어넘고는 했고, 책가방은 가만히 메지 않고 이리저리 휘두르며 다니거나, 발로 뻥뻥 차고 다니는 체력과 장난기가 넘치는 아이였다. 시험기간에는 일찍 끝나서 좋다며 집에 돌아가 신나게 놀았는데, 시험날 아침이면 나에게 시험에 나올만한 거 10개만 집어달라고 했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집어준 것만 열심히 보고 인풋 대비 엄청난 아웃풋을 뽑아내고는 했다. 내가 울적한 날이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끌고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며 재밌게 깔깔대며 함께 놀았었다.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서 주변에서,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우리 둘이 어떻게 친한 걸까 다들 의아해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녀는 나의 가장 오랜 친구로 건재하게 남아있다.




몇 년 전, 그녀가 10년이 넘는 장기 연애의 마침표를 찍고 결혼을 했다.

교복을 입고,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신나게 수다를 떨던 우리는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리란 걸 상상이나 했을까? 곁에서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이제는 내 친구처럼 느껴지는 신랑의 손을 잡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내가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 사람의 성장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 어떤 행복의 증인이 되는 것은 마음이 꽉 차게 기쁘고도 눈물겨운 일이다. 그녀의 결혼식에서 나는 축사를 맡았는데, 하마터면 축하를 제대로 전하지지도 못하고 우느라 바쁠뻔했다. 나에게 내가 그녀의 자랑이라고 말해주는 친구, 그녀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게 나에게는 늘 자랑이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가 아기를 낳았다. 겁 없이 담을 오르던 그녀답게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아기를 낳아서 의사 선생님도 놀라셨다는 후문을 듣고는 정말 그녀다워서 웃었지만, 이제 병원에 간다는 연락을 받고, 아기가 잘 태어나고 친구도 건강하다는 연락을 받을 때까지 어찌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새로운 행복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늘 꼭 건너가야 하는 난관 같은 게 있는 법이라, 이번에도 친구가 그 여정을 무사히 잘 건너기를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마음을 다해 응원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친구의 아기는 친구를 꼭 닮았는데, 내가 미처 몰랐던 그녀의 더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간지럽고 기특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면 그 시절,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 길 위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기도 하고,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지팡이가 되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도 그녀의 성장을, 변화를, 행복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녀가 앞으로도 나의 어설픔을, 찌질함을, 뚝딱거림을 씩씩하게 버텨주기를, 어렵고 힘든 날들이 찾아오더라도 우리가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


할머니가 된 나도,

그리고 동갑의 씩씩한 할머니가 될 그녀도 참 궁금하다.

우리, 사이좋은 할머니들이 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몬드를 캐는 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