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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매랑 미술놀이터

평화마을 대추리 어르신들과 그림그리기

by 마일로


이윤엽 작가의 그림과 글씨

십여 년 전, 대추리마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화마을 대추리가 지금의 마을에 정착하고 행사 때 마을을 드나들며 가벼운 인사 정도로 마주쳤던 어르신들. <웬즈데이앨리스>는 2023년 어르신 놀이터 프로그램을 계기로 대추리 할머니들을 가까이서 만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림을 어색해하시고 진행자들도 낯설어하셨지만 우리는 금세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대추리어르신들은 그간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온 저력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미술놀이터 회차가 거듭될수록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셨다. 새롭고 다양한 미술 경험을 하다 보니 80대 어르신들은 일찍이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셨다.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처음이라며

‘잘하지 못해도 봐줘요. 처음이라 그런겨.’

라며 엄살을 부리셨지만, 재료에 따라 사용법이 다른 것을 찾아내기도 하고 좋아하는 색, 원하는 재료를 찾아 자기만의 색을 칠하고 성실하게 매주 참여해 주셨다.

진행자들은 어르신들이 어려워하는 것들, 이를테면 자개 모빌 만들 때 색깔 낚싯줄 끼우는 것도 안 보이셔서 못하실 때만 도움을 드리고 거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내셨다. 어르신들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마을을 방문한 분들이 경로당에 들를 때면

‘우리들이 다 했어요. 처음 해봐서 힘들었어요.’

라고 말씀하시며 뿌듯해하셨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아이들이 처음 그린 그림처럼 귀하고 아름다웠다.


평화마을 대추리 경로당으로 오는 날, 상반기에는 매번 긴장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르신들은 처음 하는 경험이실 테니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동안 잠시 여름방학을 갖고, 새로운 미술놀이를 가지고 대추리로 오는 날 잊혔던 기억 조각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2006년 봄 주말. 평택에서 대추리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들어오던 길에 본 창밖 풍경, 어느 지점에서 버스가 멈춰서 승객을 모두 내리게 했던 일, 소나무 숲이 있던 길, 농협창고 앞, 그리고 어느 날 저녁엔 갑자기 마을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할 뿐 아니라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했던 것, 그래서 그날 밤 어떤 할아버지 댁 마루에서 잠을 잤던 것, 그리고 그 집에서 아침을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하면 공포의 밤이었는데, 집 안에서는 친척 집에 간 것처럼 다음 날 아침에 그 댁의 아주머니께서 아침밥을 주셨던 것이 떠올랐다. 그 아주머니 중에 한 분이 우리와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또 우리 어르신들은 그날의 다른 사람에게 아침을 차려주셨을 수도 있다.

20대의 어느 시간에서 십여 년을 훌쩍 뛰어넘어 단 숨에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꽃 부채는 여름에 잘 쓰셨어요?” 여쭤보면

“두 개 다 손주들이 가져갔어요.”라고 하시고,

“직접 그린 우산 들고 장에 가보셨어요?”라고 여쭤보면

“아까워서 못쓰겠던데….”라고 하신다.

함께한 것들을 자랑스러워하시고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것이다. 모두 직접 만들어서 그렇다.

2023년 8월에 평택시 비전도서관의 한쪽 전시장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미술놀이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시했다. 이장님과 마을 사무국장님께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전시장에 와주셨다. 프로그램은 방학중이었고, 한여름 걷기도 힘든 날에 선뜻 들러주셔서 기쁘고 감사했다.

나중에 경로당에서 홍옥선 할머니를 만났을 때,

“내가 그린 그림이 뭐라고 거기 걸렸대, 갔다 와서 한참 웃었어"

라고 하시며 웃는 어르신의 모습에 마음이 일렁거렸다. 80대에도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구나. 당신의 그림이 전시되어 기분이 좋으셨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물론 어르신들의 그림이 전시장에 걸리면 ‘좋아하시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렇게까지 기뻐하실 줄은 몰랐던 거다.

그리고 노영희 할머니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방에서 마루로 얼른 걸어 나오셨다.

”늙은이가 전시장 가서 구경한다고 해서 전시장에서 내 손 잡아주고 식당에서도 손잡아줘서 고마웠는데 이름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몰라서 오늘 해요. 고마웠어요.”

라고 하셨다. 나는

“괜찮아요. 제가 아니까. 또 만났잖아요.”

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지만, 감사를 전하는 할머니의 음성마저도 뭉클했다.





-웬즈데이앨리스는 이현정이 운영하는 동네 카페이자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곳이다.

2023년 평택시 문화재단 어르신 문화향유 지원사업에 '꽃할매랑 미술놀이터'라는 기획으로 선정되어 운영하였고, 2024년에는 같은 사업에 '꽃할매랑 이야기보따리'라는 기획으로 선정되어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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