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 GOP, 최최전방, 북한까지 800m
정보장교로서 북한군 감시 업무를 하면서, 최전방 부대로 지형정찰을 2주간 집중적으로 다닐 때가 있었다. 선임이 짜준 계획표대로 각 부대에 승인을 받아 다녔는데, 늘 잠이 부족할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부대간 이동시간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계획표여서 각 부대에 시간 맞춰 도착하기도 바빴다. 나는 이때, 레토나가 얼마나 크게 덜컹이고 휘청일 수 있는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게 어떤 느낌인지, GP와 GOP는 어떤 세상인지, 사람이 살라고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간접 경험을 하며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 배정된 운전병은 전역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말년 병장이었다. A병장은 "저 무사히 전역할 수 있게 꼭 도와주십쇼"라고 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당시 운전병은 본인의 과실이든 아니든 운전 중 차량 사고가 나거나 차량을 손상시키면 영창을 가는 시대였다. A병장이 전역 한 달을 남기고, 웬 장교 하나랑 2주간이나 최전방만, 그것도 한겨울 꽁꽁 언 도로를 다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내 잘못은 아니었으나 그저 미안한 마음이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평생 봐오던 상식적인 도로가 계속 이어졌고, 끝없이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 도로가 부대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지는 줄 알았다. 2010년대에 한국에서 비포장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끝도 없이 북쪽으로 올라갔지만, 도착까지 한참 남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몇시간을 달려왔는데 아직도 멀었다니, 대체 최전방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란 말인가.
해당 부대로 전입하기 전에도 나름 전방부대에서 근무했었다. 부대 주변에 민간인은 살지 않았고, 미용실도 없었고 편의점도 없었다. 식당도 중식당, 한식당, 피자·치킨집 이렇게 한 개씩 있었다. GP는 몰라도, 적어도 GOP는 비슷한 환경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은 갖춰졌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군 생활을 하면서 겪어본 적 없는 비포장도로를 끝없이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서 '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토나가 온몸이 휘청일 정도로 덜컹거리고 휘청거려서 부서지거나 옆으로 쓰러지는 줄 알았다. 베테랑 A병장은 절대 그런 일을 만들지 않았다. 본인의 무사 전역을 위해서라도 안전에 안전을 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A병장이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출하는 건줄 알았다. 그 정도로, 손에 땀이 가득 찰 만큼 차량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그 길도 끝날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