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2)

GP 장병들과의 만남

by 밀덕여사

GP만 해도 여러 군데를 돌았다. GP는 한 번 들어가려면 중간에 방탄모, 방탄복을 착용하고 휴대폰을 반납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외부 세상과 완전한 단절이다.

말로만 듣던 GP를 직접 가보니 내가 감시 임무를 수행해야 할 지형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GP장들과 병사들은 나에게 감시 구역과 체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모두 내가 달달 암기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대체로 GP는 분위기가 좋았다. 말그대로 가족같은 분위기였다. 내 방문이 GP 투입 부대 교대 시기와 겹쳐서 정신없는 곳도 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배우는 것이 있었다. 내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GP를 관리하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운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적어도 일선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도 안되는 지시를 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GP장들 중 내 친한 동기들도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서 안부를 물었다. GP마다 시설이 천차만별이었는데, 대체로 시설이 낙후돼 있었다. 다들 정말 고생이 많다고 느꼈다. GP 장병들이 임무수행 하는 모습을 보면서 숙연해질 때가 많았다. 그 칼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초소 근무를 서는 병사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들에게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물으면, 나에게 속사포처럼 막힘 없이 브리핑을 해주었다.

GP장은 모두 선발된 우수자원이라서 그런지 동기뿐만 아니라 선배들도 성격이 활달하고 병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또 굉장히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내가 같이 한 공간에 몇 달간 갇혀 지내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일반 부대에 비해 분위기가 좋았다.

GP장은 학사, 학군, 3사 등 다양한 출신의 장교들이 맡고 있었다. 그중에 육사 출신도 한 명 있었는데, 이 GP장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다른 GP장들은 나와 교류도 잘 했고 병사들과도 잘 어울리며 지시도 곧잘 내리는 리더십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는 여군이 GP에 들어와 휘젓고 다녀 불쾌하다면서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고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내 신경질과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를 못본 척하고 지나갔다. 나도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고 직접 가서 배워 오라는 명령에 따라 간 건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워낙 많은 부대를 다녀야 했지만 최전방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데 빈 손으로 가기는 뭐해서, 없는 돈을 털어 비타500이나 박카스 상자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었다. 그는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완전히 방치된 채 병사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다니는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그의 후배가 나에게 '우리 GP장이 좀 예민한데 가서 먼저 다가가서 경례 각잡고 하고,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알려달라고 하면 우리 GP에 대한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했다.

황당했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GP는 갑자기 찾아갈 수도 없는 곳이다. 그는 나보다 임관 시기가 반년 정도 앞섰는데 '깍듯한 선배 대접'을 받는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A병장과 그 고생을 하며 그 멀리까지 갔는데 소득 없이 돌아갈 수는 없어 지은 죄는 없지만 일단 굽히고 들어갔다.

그제서야 자신이 많이 봐준다는 식으로 대강 해치우고 꺼지라는 듯이 무성의하게 설명해줬다. 난 그것마저도 감사하고 은혜롭다는 듯이 듣고 있어야 했다. 내가 제대로 배워야 본인들도 임무 수행에 차질이 없는데,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거나 안하는 사람 같았다. 군대나 군대 밖 사회나 인간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

괜히 그 뒤로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편해지기도 했다. 여하튼 GP 지형정찰은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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