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고 나면, 회사 출입문을 나오면, 익숙한 귀갓길을 따라 액셀을 밟는 중에, 저녁밥을 먹고 늘어진 몸을 소파에 기대면, 침대에 바른 자세로 누워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나면 꼭 오늘 회사에서 수화기 너머 맞짱 뜬 그 순간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올라 모노극을 하듯 어둠 속 천장을 보며 중얼거려본다. 어디까지나 중얼거리기만 할 뿐, 다시는 그 말을 뱉을 기회도 여지도 없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화가 내일의 내 일에 큰 지장을 줄 것이다.
회사에서 이리저리 핑퐁게임의 화두가 되었던, 나에게 안 왔으면 하는 그 일이 나의 담당으로 주어졌고 그 일이 나의 커리어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큰 부담감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시키면 해야 하는 일개 월급쟁이에게 '안 한다'는 옵션은 없으므로 빨리 내 것으로 인정하려던 차, 환멸을 느끼게 했던 건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공동의 업무 성과목표가 있음에도 개입조차 하지 않으려는 업무 관련자의 그 괘씸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걸 견디지 못하면 내 자리를 박차고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인데, 어차피 내가 나가도 일은 잘 돌아간다. 조직이란 감히 개인이 사라진다 하여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그 골조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은 절대 혼자서 이뤄낼 수 없다. 하다못해 그 일이 성사되려면 윗분의 결정(승낙)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자기 부서 내의 일도 그러한데 타 부서와 공조해야 하는 일은 오죽할까.
가끔은 굽신거려야 하고 가끔은 마땅히 요구를 해야 하며 가끔은 합리적인 거래를 제안해야 한다. 이 과정이 부담스럽다 하여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고 그에 따른 경력과 연륜으로 어쩔 수 없이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점점 많아진다면 결국 그 사람은 능력 없는 리더 아니, 능력 없고 나이만 많은 조직 구성원이 된다.
존버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자기조절이 수반되어야 한다. 자기조절은 끝없는 외부 환경, 사람과의 마찰과 자기 역량보다 더 한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유연한 사고와 실력으로 쳐내며 내공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왜 일을 그따위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자임을 늦게라도 알아챘다면 그저 나의 실력으로, 사람에게 데이며 단단해진 마인드로 존버 하자. 응대하자.
혹시 아나? 그러다가 오히려 그 자가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며 포용하는 경지에 도달할지도.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와 부딪힌 면에 대해서만 그러할 뿐 사람은 입체적이므로 내가 배울 점도, 못본 점도 분명 있을 것임을 생각하기 싫어도 잠시 생각을 전환시키려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