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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만 Aug 18. 2022

존버를 고찰하다

직딩마인드#2 진정한 존버러 되기

오늘은 정말로 퇴사 각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회사 출입문을 나오면, 익숙한 귀갓길을 따라 액셀을 밟는 중에, 저녁밥을 먹고 늘어진 몸을 소파에 기대면, 침대에 바른 자세로 누워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나면 꼭 오늘 회사에서 수화기 너머 맞짱 뜬 그 순간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올라 모노극을 하듯 어둠 속 천장을 보며 중얼거려본다. 어디까지나 중얼거리기만 할 뿐, 다시는 그 말을 뱉을 기회도 여지도 없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화가 내일내 일에 큰 지장을 줄 것이다.


회사에서 이리저리 핑퐁게임의 화두가 되었던, 나에게 안 왔으면 하는 그 일이 나의 담당으로 주어졌고 그 일이 나의 커리어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큰 부담감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시키면 해야 하는 일개 월급쟁이에게 '안 한다'는 옵션은 없으므로 빨리 내 것으로 인정하려던 차, 환멸을 느끼게 했던 건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공동의 업무 성과목표가 있음에도 개입조차 하지 않으려는 업무 관련자 그 괘씸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걸 견디지 못하면 내 자리를 박차고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인데, 어차피 내가 나가도 일은 잘 돌아간다. 조직이란 감히 개인이 사라진다 하여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그 골조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은 절대 혼자서 이뤄낼 수 없다. 하다못해 그 일이 성사되려면 윗분의 결정(승낙)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자기 부서 내의 일도 그러한데 타 부서와 공조해야 하는 일은 오죽할까.


가끔은 굽신거려야 하고 가끔은 마땅히 요구를 해야 하며 가끔은 합리적인 거래를 제안해야 한다. 이 과정이 부담스럽다 하여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고 그에 따른 경력과 연륜으로 어쩔 수 없이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점점 많아진다면 결국 그 사람은 능력 없는 리더 아니, 능력 없고 나이만 많은 조직 구성원이 된다.


존버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자기조절이 수반되어야 한다. 자기조절은 끝없는 외부 환경, 사람과의 마찰과 자기 역량보다 더 한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유연한 사고와 실력으로 쳐내며 내공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왜 일을 그따위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자임을 늦게라도 알아챘다면 그저 나의 실력으로, 사람에게 데이며 단단해진 마인드로 존버 하자. 응대하자.


혹시 아나? 그러다가 오히려 그 자가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며 포용하는 경지에 도달할지도.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와 부딪힌 면에 대해서만 그러할 뿐 사람은 입체적이므로 내가 배울 점도, 못본 점도 분명 있을 것임을 생각하기 싫어도 잠시 생각을 전환시키려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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