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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만 Oct 08. 2021

신부와 임신부

재미의맘#2 | 임신 9주 5일 | 산모일기

얼마 전 지인 결혼식에 갔는데 홀 입구에서 움찔했다. 얼마 전(나에게는 아직 얼마 전이다)만 해도 나는 신부로서 은은한 빛이 나는 흰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척 아빠와 손을 잡고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신부 입장!"

앞서가는 촬영기사님과 아빠와 속도를 맞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으면서도, 양 옆의 하객들에게 눈인사를 놓치지 않으려 다분히 바빴다. 적어도 나에게는 화려하고도 행복했던 결혼식이 지금도 초 단위로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지금 그 출발점에 내가 서있다. 신부가 된 지 4년 차에 나는 임신부가 되었다.

"임신부 입장!"

누군가 외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다.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폴짝폴짝 뛰니 손바닥을 아래로 꾹꾹 누르는 시늉을 하며 자중하란다. 같이 있던 동생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니 "얘, 임밍아웃 했잖아" 라 했고 역시나 요란스러운 축하를 받았다.


이제는 즐길 때도 됐는데 아직까지도 축하받는 게 어색할 따름이다.

신부가 되기로, 그러니까 결혼 청첩장이 나온 날에는 주변 사람에게 한시라도 빨리 알리고 싶어 종일 휴대폰을 놓지 않고 수시로 연락을 했다. 축하에 흠뻑 젖을 만큼 축하를 많이 받았고 신부가 되기까지의 나날을 설렘으로 지냈다.


하지만 임신부는 기분이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르다.

다행히 2세 계획은 남편이 내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줬다. 신혼생활도 즐기고 사회초년생으서(결혼 당시 직장 2년 차) 각자 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을 계발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으니 아이는 늦게 가지자고 했던 터였다. '늦게'라는 기준을 몇 년으로 잡아놨던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아이를 맞이할 때가 되었다 싶을 때 말하겠노라고 혹시나 모를 남편의 기다림을 진작이 커트시켰다.


시간이 흘러 남편이 '만약 우리 자식이 ~하면'이라고 가정법을 으레 늘어놓을 때였다.

그동안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같이 무난히, 묵묵히 내 곁에 있어준 남편에게 감사하고, 또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부족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내 분야에 경험치를 어느 정도 쌓은 것에 대해 칭찬했다.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와 나 중간 사이의 어딘가를 닮은, 또 하나의 인격체가 우리 집에 있음을 상상했을 때 어색하다기보다 완벽히 채워진 퍼즐이 떠오른 건 올 늦봄이었다.


그렇게 새 생명이 찾아온 지 9주가 되었다.

한날은 점심에 먹은 샌드위치가 소화가 안돼 연거푸 양배추 알약 2알을 삼켰다. 그 주 내내 회사 오후 시간만 되면 나는 작은 통통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다니듯 넘실대는 장기 운동(?)에 꾀나 괴로워했다. 추석 때는 상다리 부러질 수 가지의 반찬들을 코 앞에 두고도 국만 깨작깨작, 샤인 머스켓만 집어먹자, 시할머님은 내 팔뚝을 잡고 내리 흔드셨다.

"요래 말라서 우야꼬. 야야... 더 먹으래이"


산부인과에 찾아갔을 때는 임신 7주 차였다.

"축하드립니다"

의사님의 말씀에 한껏 멜랑꼴리 한 기분이 든 나는 초음파 사진을 건네 받고서야 '우... 우와...'라고 감탄을 터뜨렸다. 분명 기쁜 일이고 기뻐야 할 일인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금방 잠식시켜 버릴까 봐 조심스레 시댁, 친정,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터져 나오는 이모티콘, 친근한 욕들과 축하 전화에 그제야 나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     "나 임신부네?"

신랑  "축하해. 넌 이미 엄마야."

나     "웩! 엄마요?"

신랑  "받아들여~"


이제는 선명하고도 여전히 로망으로 남아있는 신부가 아닌, 나를 표현할 새로운 용어로 '임신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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