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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만 Aug 10. 2021

#뷰;관점2엄마의 엄마에게 느낀 감정

영화 '더 파더(The Father, 2020)'를 보고

나는 시놉시스를 읽고선 나름대로 한 줄 요약을 한 후 영화관에 들어섰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 그리고 그의 딸과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


심심한 줄거리와 심심한 제목 위에 수 놓인 '안소니 홉킨스'에 대한 기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가 되었다는 사실로서 증명하는, 작품성에 대한 막연한 믿음. 그러나 <더 파더>는 영화에 대한 옹졸한 판단이 무색하게 가슴에 큰 너울을 일렁이게 했다.


조금 과장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외할머니와 그녀의 딸인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때마침 영화를 보고 난 2주 뒤 외할머니 생신을 맞이해 외할머니댁에 갔다 온지라, 지금 글을 쓰노라니 마치 너울에 또 하나의 파동이 더해져 더 큰 보강을 일으키는 듯하다.



외할머니댁에 간다고 하자, 엄마는 내가 부산에서 인천까지 굳이 올라온다며 펄쩍 뛰었다. 하루라도 건강하실 때, 생각날 때, 갈 수 있을 때 찾아봬야 한다는 일념으로 간다한 것인데 딸한테 고맙다는 소리를 못하겠어서 돌려 말하는 건지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됐건 엄마도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당신도 고속버스를 타고 오겠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연세가 들며 귀가 어두워지시다 보니,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외할머니댁에 갈 적마다 소리만 지르다 온다고 한탄을 한 적이 있었다. 보청기까지 사드렸지만 불편하다며 착용을 하지 않으신단다. 나는 연세가 들면 자연스러운 건데 정작 외할머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시겠냐며 그놈의 성질 좀 할머니 앞에서 '빠락빠락' 부리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


우리는 저녁 늦게 외할머니댁에서 상봉했고, 예고도 없는 손녀의 방문에 외할머니는 구수한 욕을 한껏 뿜어내셨다.


다음 날, 외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나는 드르륵하는 미닫이 문소리와 마당 평상에 소쿠리를 턱, 턱 올려놓는 외할머니의 그림자에 잠이 깼다. 외할머니는 4월 초에 한창 맛있는 쑥... 이 아니라 다소 철이 지나 6월 초의 억센 쑥을 얼마 전 잔뜩 캐오셨는데, 쑥과 쌀을 방앗간에 맡겨 가래떡을 만들고자 하셨다. 마침, 조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외삼촌이 나를 보러 아랫동네에서 달려오셨다.


-외삼촌:  엄마! 조금만 해! 조금만!

-외할머니:  응?

-외삼촌:  조금만 하라고! 이거 다 누가 먹어!

-외할머니:  으응?


외삼촌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쑥과 쌀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엄마는 당신이 하시겠다는데 내버려두라며 외할머니를 도왔다. 우리는 차에 몸을 싣고 방앗간에 들러 쑥과 쌀을 맡긴 뒤, 근처 유원지를 산책한 후 돌아오는 길에 떡을 찾아 외할머니댁으로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 트렁크의 떡 상자를 나르고, 외할머니는 불린 쌀이 담겨 있던 소쿠리와 물기를 짠 쑥을 감싸고 있었던 (양파망같이 생긴)망을 챙기셨다. 삼촌은 외할머니 손에 쥐어진 망을 뺏어 돌돌 말며 설명하셨다.


-외삼촌:  엄마! 이 망 버려야 해!

-외할머니:  왜!

-외삼촌:  아까 방앗간 일꾼들이 말했는데! 이 망이 하도 오래돼서 삭았는데! 그 상태로 쑥 물기를 제거하니까! 삭은 조각들이 여기에 많이 들어갔대!

-외할머니:  염병할. 삭기는 무슨. 멀쩡하구먼!

-외삼촌:  조각들을 고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골랐는데! 이거는 버려야 해! 더 쓰면 안 돼!

-외할머니:  뭔 소리야! 뭐가 삭아. 어디가 삭아!

-외삼촌:  삭았다니까! 이 쓰레기 같은 것좀 버려!

-외할머니:  멀쩡한 걸 왜 버려! 내놔!


외삼촌과 외할머니는 '삭은 망'의 양쪽 끝을 각각 잡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머지않아 힘이 센 외삼촌은 망을 낚아챘고, 손으로 가운데를 가로질러 찢어 땅에 내팽개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휴!!!!! 진짜!!!!!!"


나와 엄마는 등을 돌려 씩씩대는 외삼촌과 바람에 쓸려 멀찌감치 날아가는 망을 줍는 외할머니를 번갈아보았다.



"엄마, 울어?"


외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나와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뒷좌석에서 훌쩍훌쩍 소리가 나 백미러로 보니 엄마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본인이 갖고 계신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 것 같다는 소회(?)를 툭 던졌는데, 그 말에 눈물샘이 터진 것이다.


- 엄마:  어휴.... 삼촌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겠어... 오죽하면 조카 앞에서...

- 나:  그래.... 알지.... 삼촌도, 엄마도, 할머니도.... 원했던 상황은 아니잖아


엄마는 내가 두발로 힘 있게 걷기 시작했을 나이가 됐을 때부터 한 손에는 내 팔을,  애기띠에는 동생을 메고 외할머니댁에 갔었다. 외할머니 생신, 어버이날, 명절... 아빠가 일이 있어 같이 못 갈 때도 엄마는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고향길에 올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친정길'에 오르는 설렘과 따뜻함이 마음에서 식어졌다고 말했다.


단순히 신체적인 노화로 인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아집은 점점 끈질기고 단단해져 갔다. 최소한 엄마가 봤을 때는....


병원을 가는 것이나, 집안 살림을 돌아보는 것이나, 먼 길을 가는 것이나.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외할머니에게는 점점 흐릿해지고 부정확해졌으며 경험에 의지한 반복적인 행동마저도 미완인 채로 중단되는 게 많았다.



영화 <더 파더>에서는 정말로 기억이 흐려지는 치매 또는 알츠하이머를 겪는 노인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리얼리티를 그렸다면, 당장 가까이의 나이가 들어가시는 외할머니의 삶을 지켜보는 엄마는 현실 그 자체였다.


인간의 순리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직면할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미움, 서운함 같은 말로 표현 못할 감정... 이러한 감정을 자식이 부모한테 가져도 되는 것인지 조차 엄마는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 엄마:  엄마가 이기적인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 나:  아니야. 엄마가 이기적인 건 아니야... 그건...


나 역시 느껴보지 못한 죄의식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 채 괜히 목이 메어 헛기침이 나오는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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