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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만 Aug 14. 2021

내가 제일 잘 나가

직딩마인드#1내가 제일 잘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헤아려보는

종종 SNS나 웹 뉴스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본다. 화면에 눈이 고정된 채로 있다 보면 굳이 보지 않으려 해도 튀어나온 글자들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외모, 집, 배우자, 자동차 등 무엇이 됐던지 간에 최소한 나로 하여금 클릭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는 것인데, '그럴만하니까 그러지' 라며 인정하면서도 왠지 모를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이 사람은 누군가를 부러워해본 적이 없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말 그대로 남부럽지 않게 이미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단편적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사람에 대한 예를 들었지만 당장 인간관계에 적용을 해보자면, 사람에 대한 거리감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의 눈에 보이는 액수로서의 가치를 넘어 나의 도움이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 생기기도 한다. 혹자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면 잘 살고 있다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말하는 도움이라 함은 물질적 지원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 그래도 내게 이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는 작은 힘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후회하건대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생각에 사람과 멀어진 적이 있다.



'대체인력 모집'

채용사이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이다. 취업 준비 시절, 채용 관련 튀어나온 글자들에 주목하며 나란 사람은 언제나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기업에서는 사람을 부속품처럼 취급한다더니 정말 비인간적인 표현이라고 툴툴댔지만 그때는 나를 부속품처럼 만이라도 써주길 바랬다.


그러다 한 사립고에 재직 중인 선배로부터 기간제 교사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막연히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교육자라 불리는 수많은 직종과 직무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나는 '교육자=교사'라고 생각했고, 교육자가 되기 위한 방법은 임용시험 한 길뿐이라 내가 도달할 수 없다 여겼다.


"1년 단위로 평가를 해서 재임용을 하는데..."

이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더 이상 채용사이트만을 뒤져볼 수는 없어 실무경험을 가장 큰 메리트로 삼아 지원했다. 그즈음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어...' 메일을 또 당면한지라 되면 하고 아님 말고 식의 스스로를 위로할만한, 떨어져도 되는 합당한 이유도 만들어놨었다. 그러나 막상 이력서를 제출하고 나니 꼭 붙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과 함께 되면 하고 아님 말고의 상충되는 마음이 자기소개서에 드러나지는 않았을까 조마조마했다.


면접을 본 며칠 후, 합격이 되었으니 채용 검사 결과를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예에쓰!"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내적 기쁨을 표출하고 있는 나를 거울로 보니 그간 아닌 척했지만 굉장히 고팠구나 싶어 머쓱했다.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대학 동기들에게 그룹을 막론하고 나의 기쁜 소식을 받아줄 만한 사람이다 싶으면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 이모티콘과 응원글들은 나의 마음을 한껏 비행기 태웠다. '내 첫 직장이 학교라니!'


'초짜배기, 25살, 막내, 고등학교, 기간제, 여교사'라는 타이틀은 직장 내뿐만 아니라 어딘가 나를 소개할 때, 주목받기 좋았다. 타이틀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던 선배 선생님들로부터도 어른스럽고, 똑부러지고, 학생 지도를 잘한다고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스스로를 남부럽지 않은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겸손을 조금 보태자면 세상에 날고 기는 사람이 많으니 제일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는,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취업, 인간관계, 건강, 시간관리 등 시시콜콜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룸메이트든, 친구든, 선후배든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멘토(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나무숲처럼 편한 사람들)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분명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따금 그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잘 지내고 있다는 한마디로 대화는 빠르게 종결되었다. 정말,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無)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나마 간헐적이라도 유지된 연락마저 끊어지자, 어느새 나의 메신저 상위에는 업무와 자기계발에 애쓰는 무리들의 사무적인 단체 채팅방만이 남겨져있었다. 가십거리나 쇼핑 특가 소식을 알려주던, 아빠의 건강검진 결과에 걱정하던, 생각 전환이 되는 좋은 글을 공유하던,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속상해하던, 엄마 생일 선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던, 친구의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추억을 다독이던 채팅방들은 지하 깊숙이 내려가 스크롤바를 한창 내려야 했다. 


직장에는 적응이 된 만큼 책임과 부담으로 인한 짐은 늘어갔다. 그렇게 나의 마음도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 있을 때쯤, 그때서야 나는 날짜가 한참 지난 메신저들을 훑게 된 것이다.


대화를 하나씩 다시 열어보니 '내가 왜 이렇게 밖에 답변을 하지 못했을까, 조금 더 마음을 써줬더라면...' 싶은 말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당시 그 메신저를 보낸 사람은 어떤 상황과 마음이었을지 기억을 복기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나도.


어딜 가나 텐션이 높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인데, 나 역시 사람인지라 다짐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공허함, 허탈함 같은 감정이 지배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 그저 나의 정리되지 않은, 늘어놓는 말일지라도, 'oo(이응이응), 그랬구나', '헐! 왜 그랬대?'라고 말을 해준 사람들. 내게 이런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는 때가 있었다.


내가 제일 잘 나가기를 응원하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도움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대체될 수 있지만 이들은 대체될 수 없는데...



이후, 내가 잘 나간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하면 거짓말이다. 그런 생각은 무언가를 달성할 때, 계획한 바를 잘 해낼 때 꿈틀대는데, 그럴 때마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경계한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뿌듯해하기를 금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렸을 적 "고놈 참 똑똑하네"라는 말 한마디가 씨앗이 바람에 휩쓸리듯 잠시 머물다 가면 다행이지만, 그 씨앗이 심기면 평생 술자리에서 "내가 어렸을 때 똑똑하단 소리 진짜 많이 들었거든" 이라며 바람 잘날 없는 가지 많은 나무가 될 수 있다.


존재, 그 자체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늘도 나는 잘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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