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요새 즐겨 입는 조끼 패딩이 있다. 얇고 가벼운 탓에 손길이 자주 간다. 색도 아무렴. 무난한 검은색이다. 그리고 이 무난하고 간편한 옷 뒤에는 나의 오만함과 편견이 동시에 담겨있다.
조끼 패딩은 남자 친구의 어머니께서 사주신 것인데, 조끼 패딩을 살 때의 일이었다. 왜일까. 어머니께서 마음에 드는 것을 사라고 말하셨을 때, 나는 슬쩍 여성용 조끼 패딩을 몇 번 훑다 자연스레 아동복 코너로 향했다. 나 정도의 마르고 작고 가녀린 덩치라면 아동복도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 나는 마르고 날씬하다는 오만함. 내가 아동용 조끼 패딩을 입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놀랄 거라는 오만함과 편견.
이를 편견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은, 내가 집에서 돼지라고 자주 놀리던 동생에게도 이 조끼 패딩이 맞았다는 것이고 하물며 엄마에게도 맞았다는 것이다 (물론 잠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만함과 편견 뒤애는 열등감을 포장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태생부터 크지 않은 키와, 어른스러운 여성복은 어울리지 않는 몸매. 어른스럽고 여성스러운 옷을 잘 소화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그런 옷을 입은 나를 상상할 때에는 고개를 젓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러움과 열등감을 숨겼다. 차라리 작고 왜소하게 보이고 말지. 우아하고 여성스러울 수 없다면 작지만 근육이 멋진 몸매를 가진 사람이 되자.
애석하게도, 여전히 귀여울 만큼 작거나, 멋진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근데 문득 나의 오만함과 편견이 우습고 귀여워 보였다. 오만함과 열등감에 솔직한 내가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끄적인다.
어떤 때는 오만하고 어떤 순간에는 열등감을 느끼더라도, 솔직해져야겠다. 그것이 결국 나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행위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