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향하는 삶
자기소개를 두 줄로 써야 할 일이 있었다. 한 문장도 아니고 한 단어도 아니고 한 장도 아닌, 단 두 줄의 자기소개.
태생적으로 말이 많은 나라서, 한 문장이나 한 단어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몇 개의 단어를 조금 추가한 두 줄의 자기소개가 쉬운 일이 되지는 않았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자랑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엄살도 심한 나 같은 사람은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문장보다는, 구구절절한 여러 장으로 소개하는 편이 쉬웠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게 어렵고, 다 필요해서 샀다는 어느 맥시멀 리스트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나를 소개하기 위해선 다 필요한 문장들인데. 여기서 어떻게 단 두 줄의 자기소개로 만든단 말인가. 사연도 가득하고 야망도 가득한 여러 장의 자기소개를 한 문장씩 쳐내는 것은 그야말로 몹-시 어려웠다.
단 두 줄이라니. 애꿎은 입술을 잡아 뜯으며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잘하는 것을 써볼까, 좋아하는 것을 써볼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았지만, '생각보다' 변변찮았다. 하나씩 써보니, 나를 단 두 줄로 소개할 만큼 내가 이것들에 진심인지 헷갈렸다. 더불어, 나라는 사람을 단 두 줄로 소개할 만큼 이 일들을 앞으로 계속할지도 의문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뭐, 나름?이라는 시원찮은 대답을 내뱉었다는 건 확신이 없다는 뜻이었으니깐. 스스로를 소개하는데 확신이 없다는 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내 친구를 소개팅에 내세우는 것과 따위의 일과 같았다.
그렇다고 26살 대학원 다니는 김혜미입니다.라고 쓰는 건 세상 멋이 없었다. 계속 26살도 아닐 테고 영원히 대학원생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깐 말이다. 나라는 사람을 직업으로, 나이로 규정하고 소개하기엔 내 정체성을 그것으로 한정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정체성이란 것이, 자기소개란 것이 흘러가는 물길 속에서도 버티고 있는 단단한 바위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제일 자신 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에 대해 쓰기로 했다. 습관이라는 애증 어린 것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말이다. 변하려고 노력했으나 바뀌지 않았고, 사실 이제는 오래도록 들러붙어서 습관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된 것. 습관을 뛰어넘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지에 대한 나의 지향점.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성향 탓에 자주 쉬어갑니다. 그 때문에 몰아서 바쁘게 삽니다. 느슨하게 살기도 팽팽하게 살기도 하는 고무줄 같은 삶을 지향합니다. ]
문장을 손으로 쓰다듬고 입으로 천천히 곱씹었다. 정말이지 내 삶은 그랬기 때문이다. 학과 1등도 해보고 열심히 다니다 냅다 휴학을 하고,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서 주 6일 하루에 12시간 일을 하다가, 공부가 하고 싶다며 복학을 했다가, 졸업 후 놀고먹으며 지내다, 책을 내고 싶다며 글을 끄적거리다, 또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 대학원을 가는 저 혼자 막 팽팽하게 늘렸다 다시 놓치는 고무줄 같은 삶.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대학교 졸업 그리고 취업이라는 수순을 당연하게 밟아가지는 않는 나를 보며 왜 난 찐득하게 해내는 법이 없을까. 밍기적 밍기적 쉬어가는 걸 이리도 좋아할까. 반성도 하고 푸념도 했다. 그래도 버려지지 않는 습관이었다.
버려지지 않고 바꿔지지 않는 습관이라면, 이걸 되려 장점으로, 삶의 지향점으로 만들어가자 생각했다. 지독히도 고쳐지지 않던 습관을, 삶의 지향점으로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고유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왜 남들과 같지 않을까 고민하거나 뒤처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못나다 여겼던 습관을 삶의 지향점으로 인정하고 나니,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고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 떼내어지지 않는 습관을 인생의 지향점으로 만들기.
저를 소개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성향 탓에 자주 쉬어갑니다. 그 때문에 몰아서 바쁘게 삽니다. 느슨하게 살기도 팽팽하게 살기도 하는 고무줄 같은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