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명연기자〉

관객의 시선, 배우의 과정




1990년 서울의 겨울밤.

외풍에 찬바람이 스며들던 방 안,

나는 난로에 갓 구운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입시준비로 올라온 부산 사는 사촌과 연말 연기대상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대상 발표.

그 해 영예는 한 젊은 여배우에게 돌아갔다. 꽃다발에 휩싸여 눈물을 펑펑 흘리며 수상 소감을 말하는 순간, 사촌이 툭 던졌다.


“니는 저런 거 보면 무슨 생각이 드노? 내는 연기 같더라. 저 정도 배우는 어디서든 연기 가능할 끼다. 저기도 무댄 기라.”


그 말은 내 머리를 번쩍 때렸다.

“배우는, 서 있는 곳이 곧 무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관객일 때 / 배우일 때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 배우, 오디션 경쟁률 2000:1 뚫고 주연 차지!”

“제는 해도 해도 연기가 늘지를 않네.”

“이번 드라마는 주조연 할거 없이 연기 구멍이 없다.”


관객의 언어는 빠르고 간단하다. 결과로 판단하고, 단호하다.


그러나 배우는 다르다.


수많은 오디션, 수많은 거절.

드물게 찾아온 캐스팅의 기회.

대본을 읽고 또 읽는다.

인물의 의도를 파악하고,

수십 번 대사와 동선을 맞춰본다.

어색함을 넘어 자연스러움으로.

상대와 호흡이 맞아떨어질 때까지.


그 긴 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관객 앞에 배우로 선다.



한동안 나는


인생을 연기하는 건 가식일까?


생각했다.



혼자 여행을 하던 중, 호텔 수영장에서 세 가족을 보게 된다.


부부 중심의 가족 — 다정히 샴페인을 기울이며 수영하는 아이들을 므흣하게 바라본다.

일반적인 4인 가족 — 문안하지만 건강하다.

자식 중심의 가족 — 부부는 오직 아이를 사이에 두고만 대화한다. 아이는 조심스럽다.


그때 생각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면, 그냥 사이좋은 ‘연기’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위선이 아니라,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을 위한 예의.

답을 얻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이 선명해진다.

“그래. 나야말로 내 인생 연기를 제대로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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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은 이미 내 손에 있다


“답은 대본에 있어요.”

많은 배우들이 말한다.


내게 대본은

사주팔자와 DNA라는 날실,

환경이라는 씨실로 엮인 시놉시스다.

거기에 내가 원하는 엔딩을 구체화한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기 위한 지문을 달고, 동선을 짜고, 카메라 앵글까지 정해 보는 거다.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더 궁금해지게 만드는 든든한 연기자로서.

돌발 상황이 닥쳐도 페이스를 잃지 않는 명배우처럼.

계속 연습해 나가면 결국 자연스러움이 나온다.



-내가 원하는 배역-


선택할 수 있다면,

뻔한 재연 드라마의 주연보다 감초 같은 조연이 되어 좋은 작품에 남고 싶다.


한때 주연으로 큰 히트를 치고 몇 년 뜸해진 스타보다,

조연이어도 꾸준히 캐스팅 후보에 이름이 오르는 배우.


그리고 마지막엔,

가능한 좋은 기억으로 내 인생을 추억하게 되는 배우.



[에필로그] # 마지막 캐스팅


어느 날, 캐스팅 담당자에게 전화가 온다.


“비중은 작지만, 대본을 보는 순간 배우님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이웃집 어르신 역인데요.

항상 바쁜 가족들 때문에 외로운 주인공의 곁에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실 인물입니다. 어떠세요?”


나는 웃으며 바로 대답한다.

“네, 하겠습니다.”


무대는 이미 내 삶 전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