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미술을 전공하던 시절 나는 선배들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
“돈도 없으면서 눈만 높아지는 것도 불행이다. 자식 낳으면 어설프게 미술 안 시키련다.”
그 말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나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한때 집안이 잠깐 부유해져서, 부자들만 산다는 동네에서 십 대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난을 느꼈다.
집에서는 오예스 한 조각이면 충분히 행복했는데, 친구네 집에 가면 간식으로 신라제과 케이크가 당연히 올라왔다.
나는 동그란 케이크는 생일날에만 먹는 줄 알았는데,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지나 보니 감사한 자극이었지만,
당시에 나에겐. 일상이 항상 다르다는 건,
여운이 길게 버거웠다.
그래서인지 나도 선배처럼
‘무난하고 변동 없는 삶’
을 지향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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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 새 옷 샀네?”
“아니, 유니클로야.”
몇 번이나 들었던 이 대화.
궁금해서 지인에게 물었다.
“왜 다들 이렇게 답해? “
그는 웃으며 말했다.
“유니클로는 옷이라기보다 필수품이잖아.
자기 옷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그렇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번쩍했다.
그래, 나는 나라면서! 왜 내 주변을 무난함으로만 덮어두고 있었을까?
그때부터 작은 표현을 시작했다.
꼭 호사하고 싶은 부분을 정했다.
예컨대 타월, 핸드솝, 핸드크림은 내가 좋아하는 향과 촉감을 찾아가면서.
옷과 침구는 브랜드보다 소재와 질감을 중시하면서.
내 눈에 멋지고 예뻐 보이는 사람을 흉내도 내보고,
나만의 오감을 체크하며 여러 시도를 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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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 된 글이 있었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한 사람이 고향의 산까지 사들여 만든 정원 이야기.
바로 아다치미술관이었다.
165,000㎡의 거대한 정원.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림처럼 변하는 풍경.
“정원도 한 폭의 그림이다”라는 설립자 젠코의 신념.
그리고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별 세 개를 받은 명성.
나는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곳에 갔다.
비가 갠 아침, 너무나 청명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기대보다 덜 벅찼다.
동경이 너무 커, 자주 봐왔기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곧, 안내에 따라 정해진 자리에 앉아
오른쪽, 왼쪽, 그리고 정면의 창을 통해 바라보았다.
그 순간 풍경은 정원이 아니라,
나를 향한 프레임 속 그림이 되었다.
그는 떠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그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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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심미안이란
아다치미술관에서 나는 선명하게 깨달았다.
설립자(1899-1990)가 노년에 우연히 마주한
요코야마 다이칸(1868-1958)의 그림에 깊이 감동해 전국에서 수집했다는 그림들.
나는(1972- ) 그 덕분에 이곳에서 지금,
다시 시대를 건너뛰는 생동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곳을 떠받치는 수많은 손길.
정원의 키 큰 나무를 다듬던 정원사분들의 농담,
“머리가 커 보이지 않아^^?! “
“그럼 위쪽을 조금 더 위로 쳐봐 “
그 선량한 웃음에서, 공간은 새로이 더 깊어졌다.
기념품 가게에서 우아한 마담이 말하던 한마디도 잊히지 않는다.
“요코야마 다이칸 그림을 에코백으로 메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라니, 참 좋은 세상이지.”
나 역시 그 에코백을 사며 기분 좋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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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이렇게 큰 사고를 하고, 그걸 아낌없이 공유하다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내 작은 노력이라도 표현하고 나누며 살고 싶다.
‘무난함’만으로는, 내 심미안을 배신하는 일이다.
정원은 매일 조금씩 손길이 닿아야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삶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도 내 하루를 닦고, 다듬고, 웃으며 가꾼다.
“나는 소망한다.
맑은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빛나는 순간 그대로 나의 심미안에 새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