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붙잡아준 감각, 흩어지지 않게


어느 날 주말 저녁,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앵커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윔블던에서 이런 공연이 있었습니다. 세상 참 좋아졌네요. 좋은 일요일 밤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곧, 화면이 전환됐다.

파란 재킷을 멋지게 입은 조지 마이클.

무대 뒤에서 걸어 나오는 엘튼 존.

관객들은 열화와 같이 환호했다.


둘은 듀엣으로 노래했다.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무대와 관중이 하나가 되고, 곡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장미꽃이 무대 위로 던져졌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숨이 막힐 만큼 몰입했다.

스무 살 언저리였을까.

그날 저녁, 서울의 방 한편에 앉아 있던 나, 아나운서의 목소리, 세계 저쪽 영국 공연장의 열기까지—

모두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시간이 흘러, 몇 년 전.

큰맘 먹고 장만한 최신형 TV를 연결하며 가장 먼저 튼 것도, 그 공연 실황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영어 가사를 몰랐지만, 그저 감각으로 호소와 해방을 느낀 곡.

여전히 내 안을 두드렸다.



나는 늘 생각해 왔다.

내가 가진 가장 발달한 감각은 후각이고, 그다음이 청각과 촉각이라고.


후각이 발달했다는 건 때때로 불편하다.

민감해 보인다는 인상을 주고, 잔상이 오래 남아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예민함이 나를 붙잡아주었다.


나는 20년 넘게 사람의 몸을 만지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인간관계보다 고객과의 관계가 가장 편했던 건, 이 후각과 촉각 덕분이었다.

그리고 자영업자로서 꾸준히 밥벌이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내 청각 덕분이었다.

고객의 목소리에 숨어 있는 기분과 필요를 놓치지 않으려 귀 기울였기 때문이다.


작은 에피소드들도 많다.

피아노를 오래 배웠지만 소질이 없어 늘 꾸중만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청음 테스트만큼은 늘 최고였다.

예전 한국에서 상담 전화를 받을 땐, 목소리만 듣고도 고객의 인상이나 분위기를 놀랄 만큼 잘 맞혔다.

지금도 요리를 마치고 일부러 환풍기 냄새를 맡으며 오늘 요리가 잘 됐는지 ‘최종 테스트’를 한다.

일할 때 고객이 위로가 필요하다는 기운이 오면, 말은 줄이고 내 손끝의 촉감으로 에너지를 전한다.


보이지 않는 후각·청각·촉각, 이 감각들이 내 삶을 지탱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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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감각은 어느 날 나일강 위에서 다시 절정을 맞았다.


2년 전, 이집트 여행에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유람하던 날이었다.

가이드는 노래방처럼 흥을 돋우고, 사람들은 춤을 추며 떠들썩했다.

신청곡 코너가 돌아왔다.

분위기상 신나는 곡을 눌러야 할 것 같았지만, 나는 슬쩍, 재빨리 내 곡을 눌렀다.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순간, 다른 소리와 움직임이 모두 음소거되듯 사라졌다.

뜨거운 햇살과 사막의 바람이 스쳐가는 그 순간,

30년 넘게 내 삶을 따라온 그 곡이 나일강 위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소리와 내음이야말로,

내 안의 ‘나’를 붙잡아주는 가장 확실한 힘이라는 걸.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소리와 내음이,

흩어지려는 나를 다시 꿰어주는 투명한 실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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