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그리고 손끝의 리듬〉


지나가다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이곳 후쿠오카에서 독주회를 연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서둘러 예매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무대 위의 그는

지금보다 훨씬 앳되었다.


하지만 첫 음이 울리는 순간,

그의 손끝에서 터져 나온 파장이

공연장을 순식간에 감쌌다.



맞다 — 피아노는 ‘현악기’였다.


오랜만의 공연장이었지만

나는 금세 그 소리에 몰입했다.


소질도 없으면서

끈질기게 배우던 나에게

피아노는 늘 ‘두드리는 악기’였다.


그래서일까, 예전의 나는

피아노 소리를 예민하게만 느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싫은 걸 너무 오래 참으며

내가 예민해진 채 버텼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

그의 연주는 내 안의 기억을 녹였다.


피아노의 소리는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그건 공기를 진동시키고,

파장을 만들며,

공간을 채워가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피아노는 이렇게나

아름답고, 힘 있는 악기였구나.



나는

사람의 얼굴 윤곽을 만드는 일을 한다.


처음엔 ‘압축’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오래 할수록 깨닫는다.

진짜 중요한 건 ‘이완’이다.


이완을 유도하고,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탄력을 얹어

지속력을 만들어내는 일.


그건 마치

연주자가 공기 속에서

소리를 조율하는 일과 닮아 있다.


내 손끝의 리듬도 결국,

공간을 울리는 연주처럼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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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클래식의 리듬에

내 하루의 주파수를 천천히 맞춰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한국 클래식 방송 라디오를 앱으로 듣는다.


일주일 동안 같은 곡을

서로 다른 연주자가 해석하는 코너가 있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그 차이를 듣는 일이 하루의 시작을

더 정교하게 움직여주는 듯하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의 주도권,

합주 속의 앙상블,

반주에서 느껴지는 배려가 다르다.


그 미묘한 호흡이 내 귀에 닿을 때,

나는 또다시

새로운 하루를 계획할 용기를 얻는다.



음악은 손끝의 압축과 이완,

삶도 결국 그 리듬 위에서 흘러간다.


같은 악보, 다른 해석.


지금 이 나이 즈음 바라볼 수 있는

인생과도 참 닮았다.



계속 혼자 연습해야 하고,

상황과 사람에 맞춰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무르익으면

어느 날엔 연주자가,

어느 날엔 조용한 반주자가 된다.


그리고 그 리듬 속에서

나는 또 나를 단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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