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른다운 결점을 대하는 태도
중학교쯤이었을 거다.
왼쪽 시력이 유난히 흐려졌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오른쪽 눈이 좋았던 덕분에, 그전까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한쪽 눈에 의존하며 지내다가
결국 오른쪽 시력도 함께 나빠졌다.
입시를 마친 나는 소프트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렌즈를 착용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나도, 남도, 내가 시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잊는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비비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지금 몇 시야?”
“네가 보면 되잖아.”
“안 보이니까 그렇지.”
“그냥 눈을 떠 얼른. 벽시계가 왜 안 보여?”
“진짜 안 보인다니까.”
찡얼거리며 일어나 안경을 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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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렌즈를 10년 넘게 쓰다 보니
눈 충혈이 잦고, 각막염도 몇 번 반복됐다.
라식을 고민하던 중, 한 의사가
“하드렌즈를 써보세요.
각막이 맑게 교정될 거예요.”
라고 권했다.
처음엔 따갑고 불편했지만,
한 달쯤 지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색이 더 선명하고, 윤곽이 또렷했다.
그렇게 나는 ‘하드렌즈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서서히, 초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안이었다.
책 읽기가 귀찮아지고,
휴대폰 문자는 팔을 쭉 뻗어야 보였다.
“눈이 나쁜 사람은 노안이 늦게 온다”더니
그건 나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돋보기를 처음 썼을 땐
‘아, 이게 나이 드는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안경 하나로 다시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되잖아.”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 대신 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시각 생활이 시작되었다.
⸻
한국에서는
이미 노안수술이 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공 수정체를 넣으면 멀리도, 가까이도 잘 보여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슬슬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 예약까지 했다.
그즈음, 샵에 오던 고객 한 분이
안검하수 수술을 받고 인상이 환해져 있었다.
“너무 예뻐지셨네요.”
그분이 소개해준 병원에 갔다.
“저도 혹시 안검하수인가요?”
“아니요!
하드렌즈 오래 쓰셨죠?
눈꺼풀 근육이 조금 경직됐어요.
그쯤 되셨으면 많이들 그래요.”
의사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의 웃음이.
‘그렇다면
이제 이판사판 내 눈 쏵~바꿔보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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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 검사를 위해
하드렌즈는 2주간 착용 금지.
20년 가까이 안경 없이 살던 나는
출근할 때 안경을 낀다는 게 너무 어색했다.
그래서 잠시 소프트렌즈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이 편했다.
선명함은 덜했지만, 눈꺼풀 근육이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검사 며칠 전, 결국 안경으로 바꿨다.
그런데 또 놀라운 발견.
아무도 “안경 끼셨네요?”라고 묻지 않았다.
아무도.
심지어 나 자신도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좀 멋져 보이기까지!^^
“나 왜 그동안 그렇게 안경을 싫어했지?”
싶었다.
⸻
드디어 검사 날.
난 거의 수술을 확정하고 간 거다.
그런데 의사의 설명은 예상 밖이었다.
“지금의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수정체를 넣는 거예요.
만약 맞지 않더라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겁니다.
시야 해상도는 확실히 약간 떨어지고요,
빛 번짐이나 눈부심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럼 왜들 하는 거죠?”
“편리함을 택하는 거예요.
돋보기, 안경 둘 다 쓰기 싫은 분들이죠.”
나는 그래도 할 이유를 찾듯 물었다.
“그래도 렌즈나 안경을 꼈다뺏다하며 오는
피로감은 줄겠죠?”
“아니요, 그건 수술로 해결되지 않아요.
그건 눈의 문제라기보다
연령에 따른 집중력과 에너지의 변화예요.”
정곡의 한 방이었다!
막연한 기대감이 터져 현실에 닿은 느낌.
수술실 문 앞까지 달려왔던 마음이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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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그냥 부족하더라도,
지금 내가 가진 것부터 잘 돌보자.’
눈에 좋은 영양제를 챙기고,
하드렌즈 대신 소프트렌즈로 바꾸고,
상황에 맞게 안경을 쓰기로 했다.
완벽하게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덜 또렷해도,
그 대신 머릿속이 덜 피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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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노화란 게 꼭 슬픈 일만은 아니더라.
보이던 게 흐릿해지는 대신
안 보이던 것들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젊을 땐 늘 완벽한 결과 하나를 얻으려 애썼다.
그러다 다른 일이 엉켜버리기도,
기운이 빠져 지속을 못하기도 했다.
어른의 삶이란 적당한 상태에 만족하는 법,
그리고 지속을 위한 애정을 애써 지켜내는 일이라는 걸.
그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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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의 무게가 꼭 무겁지만은 않기를,
그 안에 기대와 여유,
그리고 나다움이 함께 있기를.
그게 아마,
어른다운 결점을 대하는 태도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