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지 않는 나이가 되니 보이기 시작한 것들
딸만 넷인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어릴 때부터 나는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막내로 자라 늘 언니들의 등을 보며 컸던 탓인지,
또래 남자아이들은 어쩐지 유치하게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시선은 늘 연상에게로 향했다.
내가 말하던 이상형이란
늘 이런 사람이었다.
“뭔가 배울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또래와의 연애에서는 좀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고, 나보다 더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삶의 배우자로 선택한 적도 있었다.
큰 경험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인 것은 아니고,
머리가 좋다고 현명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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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초반, 어정쩡한 나이에 이혼을 하고 나니
어설픈 여러 부류의 남자들의 플러팅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내가 늘 반복하던 말이 있었다.
“내게 연하랑 유부남은 남자 아님.”
진심이었다.
가끔 멀쩡한 연상의 오빠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들이 있는 이혼녀임을 밝히는 순간
그들은 아주 공손하게, 그리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다 일본으로 건너가 일을 하며
30대, 40대 전반을
거의 ‘일’에만 온전히 쏟아 보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인생의 멘토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도쿄에서 후쿠오카로 다시 이주하면서부터는
이제야, 비로소, 마침내
진짜 독립생활이 시작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50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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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안정되면 조용히 은퇴하길 바랐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월 덕에
다시 한번 ‘나답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욕망을 얻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가능하다면
“좋은 남자친구가 있다면,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막연한 이상형이 아니라
꽤 구체적인 조건과 이미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예전의 ‘나보다 나은 조건, 기대면 포근할 것 같은 이미지’는 사라지고
딱 한 줄만 남았다.
“영육이 건강한 연하남. 외모 우선.”
나도 당황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이제 내게 없는 게 젊음이 되었나?’
한 번도 키나 외모가 우선이었던 적이 없던 내가
갑자기 외모라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제는 그냥 즐겁게 마주 앉아
잘 먹고, 잘 웃고, 잘 마실 시간이면
“당연히 외모가 중요한 부분”이 된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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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로 실제로 몇 사람을 만나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속으로 평가도 해보았다.
결론이 나온 듯하다.
“이제는 연상은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내가 연상을 선호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연상이 주는 여유로움, 경제적 우위,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안정감.
그것이 당시 내 삶의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외모는 그 한참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줄었고,
경제적으로도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 우선순위가 사라진 자리에
그동안 아래로 눌려 있던 ‘외모’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나는 더 중요한 진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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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나는 이미 50을 훌쩍 넘겼고,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은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과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 할 일들만으로도 빠듯하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갈 길을
누군가와 그대로 ‘공유하는 삶’은
이제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예전처럼
누군가에게 묻고, 배우고, 의지하는
‘인생 선배’를
자연스럽게 바라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는 어떤 가치보다도
‘나에게 충실하게 쓰는 시간’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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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운 좋게도 우연히 양옆에
재벌 회장님들이 앉아 계셨다.
한 분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 만큼
유명한 분이었다.
‘아, 저런 위치의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구나’ 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승무원들로부터 쏟아지는 지극히 정중한 예우와 서비스,
그와 함께 그분들 주변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특별한 분위기였다.
아마도 저분들에겐
상상도 못 할 책임과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늘 그런 대접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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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대접을 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나를 먼저 더 각별하게, 더 따뜻하게
대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삶은 이제
누군가를 조심스럽게 고르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분명하게 선택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