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이다. 2

― 삶을 바라보는 일


나는 달멍을 즐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체질이나 체형으로 말하자면 음인이라서 그런 건지,

밤하늘 아래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삶이 조금 더 고맙게 느껴지고,

조금 더 흥미로워진다.


달은 늘 저 하늘 위에 둥— 떠 있지만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늘 달이면서도, 늘 새롭다.

나는 그래서 좋다.



얼마 전 유럽을 여행하던 중의 일이다.

어느 밤,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멈췄다.


“어라… 달이 좀 다른데?”


후쿠오카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던 달보다

유럽에서 본 달은 더 둥글고, 더 입체적으로 보였다.


마치 공처럼, 손에 잡힐 것처럼.


이건,

기분 탓일까?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뒤

하나씩 이유를 찾아보니

그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유럽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

달이 하늘에 떠오르는 각도가 다르다.

달이 낮은 고도로 떠 있을수록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윤곽과 명암은 더 또렷해진다.


게다가 유럽의 겨울 공기는

미세먼지가 적고, 차갑고, 밀도가 높다.

빛은 퍼지지 않고 응집되고,

달은 평면이 아니라 구체처럼 보인다.


도시의 밤도 다르다.

빛공해가 적고, 조명이 낮아

어두운 캔버스 위에

달 하나만 떠 있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설산이 있는 지역에서는

눈이 거대한 반사판이 되어

달빛의 입체감을 한층 더 살려준다.


그러니

유럽에서 본 달이 더 둥글고 입체적으로 보인 건

기분 탓이 아니라,

환경과 물리 조건이 만든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 사실은

내게 여행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거구나.”


늘 같은 얼굴, 같은 구조, 같은 사람인데

환경이 달라지면 새로운 인상을 주는 것.

빛과 흐름, 지지와 여백에 따라


‘존재감’이 달라지는 것.


달이 그러했듯이

사람의 얼굴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얼굴을 ‘고치는 일’보다

얼굴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얼굴이 가볍게 떠 있는지,

어딘가에 걸려 있는지.

흐르고 있는지, 막혀 있는지.

스스로를 지탱하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기대고 있는지.



유럽의 달은

빛을 더 받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환경이 달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앞으로의 나의 일을 보았다.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구조와 흐름을 정돈해

그 사람이 더 잘 드러나게 하는 일.


얼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얼굴이 스스로 올라오게 하는 일.



이 일을 해 온 지 어느덧 20년.

내 나이 50대.


내 직업은

이제 생업을 넘어

내 삶의 기준을 세워주는 중심이 되었고,

감사의 풍요를 알게 해 준

하늘과 이어진 동아줄이 되었다.


남은 현업의 시간 동안

가야 할 길이

이제는 분명히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얼굴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얼굴이 존재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달이 더 둥글게 보였던 그 밤처럼,

당신의 얼굴도

환경과 흐름이 바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비추고, 안내하는 사람.


이미 시작되었다.

유럽의 밤하늘 아래서

달을 바라보던 그 순간부터.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