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바라보는 일
나는 달멍을 즐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체질이나 체형으로 말하자면 음인이라서 그런 건지,
밤하늘 아래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삶이 조금 더 고맙게 느껴지고,
조금 더 흥미로워진다.
달은 늘 저 하늘 위에 둥— 떠 있지만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늘 달이면서도, 늘 새롭다.
나는 그래서 좋다.
⸻
얼마 전 유럽을 여행하던 중의 일이다.
어느 밤,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멈췄다.
“어라… 달이 좀 다른데?”
후쿠오카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던 달보다
유럽에서 본 달은 더 둥글고, 더 입체적으로 보였다.
이건,
기분 탓일까?
⸻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뒤
하나씩 이유를 찾아보니
그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유럽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
달이 하늘에 떠오르는 각도가 다르다.
달이 낮은 고도로 떠 있을수록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윤곽과 명암은 더 또렷해진다.
게다가 유럽의 겨울 공기는
미세먼지가 적고, 차갑고, 밀도가 높다.
빛은 퍼지지 않고 응집되고,
달은 평면이 아니라 구체처럼 보인다.
도시의 밤도 다르다.
빛공해가 적고, 조명이 낮아
어두운 캔버스 위에
달 하나만 떠 있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설산이 있는 지역에서는
눈이 거대한 반사판이 되어
달빛의 입체감을 한층 더 살려준다.
그러니
유럽에서 본 달이 더 둥글고 입체적으로 보인 건
기분 탓이 아니라,
환경과 물리 조건이 만든 하나의 ‘현상’이었다.
⸻
이 사실은
내게 여행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거구나.”
늘 같은 얼굴, 같은 구조, 같은 사람인데
환경이 달라지면 새로운 인상을 주는 것.
빛과 흐름, 지지와 여백에 따라
달이 그러했듯이
사람의 얼굴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지금까지
얼굴을 ‘고치는 일’보다
얼굴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얼굴이 가볍게 떠 있는지,
어딘가에 걸려 있는지.
흐르고 있는지, 막혀 있는지.
스스로를 지탱하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기대고 있는지.
⸻
유럽의 달은
빛을 더 받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환경이 달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앞으로의 나의 일을 보았다.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구조와 흐름을 정돈해
그 사람이 더 잘 드러나게 하는 일.
얼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얼굴이 스스로 올라오게 하는 일.
⸻
이 일을 해 온 지 어느덧 20년.
내 나이 50대.
내 직업은
이제 생업을 넘어
내 삶의 기준을 세워주는 중심이 되었고,
감사의 풍요를 알게 해 준
하늘과 이어진 동아줄이 되었다.
남은 현업의 시간 동안
가야 할 길이
이제는 분명히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얼굴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얼굴이 존재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달이 더 둥글게 보였던 그 밤처럼,
당신의 얼굴도
환경과 흐름이 바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비추고, 안내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