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 직원에게서 생일 선물로
휘커스 움베르타 한 그루를 건네받았다.
그 직원의 이름은 아시카리.
그날부터
그 식물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공기 정화도 되고 잘 자라는 식물이에요.”
그 말이 반가웠지만,
나는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늘 식물을
시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집에 들여놓으면 잎이 떨어지고,
가게에 두면 금세 생기가 사라졌다.
가게는 생물이 필요했기에
동경에 있을 때는 결국 식물 렌털 서비스까지 이용해야 했다.
그런 내가 식물 하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기쁨보다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붙여주면 마음이 통한다고 했으니까.
누군가의 이름을 빌린 이 작은 생명에게
나는 처음으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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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카리는 어느 날부터
위로만 길게 자라났다.
줄기는 힘이 없고,
방향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영양이 위로만 가는 거 같아요.
잘라주면 다시 건강해져요.”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과감히 가지치기를 했다.
하지만 자른 뒤의 아시카리는
위로도 옆으로도 더 이상 뻗지 않았다.
새 잎은 나오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또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봐, 역시 내가 그렇지 뭐.”
식물을 키우는 일은 늘 이렇게 끝나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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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아시카리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괜찮은 척하면서도
나는 매일 그 상태를 살폈다.
흙을 갈아주고,
물을 주고,
햇살이 좋은 날에는 잠시 베란다에 내놓았다가
해 질 무렵 살며시 다시 들여왔다.
그렇게 “정성”이 “습관”으로 바뀌어갈 즈음,
아주 작은 초록빛 하나가
줄기 끝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칠 작은 싹.
나에게는 부활의 신호였다.
그날 이후 아시카리는
아주 작은 박동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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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을 되찾은 아시카리와 함께
나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
정남향의 넓은 창이 있는 집.
그곳에서 아시카리는
마치 “여기가 나의 자리야”라고 말하듯
잎을 펼치고, 윤기를 되찾고,
줄기를 단단히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처음 알았다.
식물이 이렇게도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아시카리는
내가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다시 사는 법“을
기억해 낸 생명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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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겨울날,
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계절 때문이라 여겼지만
노란빛은 너무 빠르게 번졌다.
결국 아시카리는 다시 앙상해졌다.
전문가에게 상담을 하니
“뿌리에 곰팡이가 생겼거나
과습으로 염증이 생긴 것 같아요.”
라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뿌리를 드러내 햇살에 말리고
새 흙으로 옮겨 심었다.
나처럼 식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아시카리의 생사를 건 모험 같았다.
그리고 간절한 바람이 담긴 염원의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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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시카리의 몸에서 다시
맑은 초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장, 또 한 장.
잎이 넓어지고
줄기에는 힘이 돌고
그 색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밝게 했다..
지금의 아시카리는
처음보다 훨씬 풍성하고
그리고 강하다.
그 사이 새로운 인연으로 들인 다른 식물들은
아시카리를 돌보며 쌓인 경험 덕인지
처음부터 무난하게 자랐고,
집의 풍경은 어느새
초록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었다.
가끔 손님이 집에 오면 이렇게 말한다.
“여긴 식물이 참 잘 되는 집이네요.”
“식물을 정말 잘 키우시네요.”
조금 부끄럽지만, 뿌듯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정말 그런 집이 된 건지도 몰라. “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변하고,
관계가 자라고,
그 과정 속에서
나와 아시카리, 그리고 다른 식물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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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조용히 이렇게 믿고 있다.
식물이 잘 자라는 집이란
반드시 식물 지식이 많은 집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오래 바라보는 마음,
꾸준한 반복,
변화를 들으려는 태도.
그 세 가지가 쌓이면
언젠가 초록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렇게 믿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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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서는
씨앗의 품질보다
어떤 땅에 떨어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식물을 길어온 지인은
햇빛과 흙보다
중요한 건 결국 바람이라고 했다.
햇살과 물은
한 번에 줄 수 있지만
바람은 매일 조금씩,
오랜 시간 쌓여가는 것이다.
식물을 되살리는 것은
그 작은 반복 속에 있다.
좋은 흙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흙을 들여다보고,
솎아주고,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마음이
씨앗의 미래를 더 크게 바꾼다.
그리고 나는
아시카리를 통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