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생각하는 사람

예뻤던 손에서, 일하는 손으로


세상에 전부 좋은 것도,

전부 나쁜 것도 없다는 걸

우리는 연륜을 통해 알게 된다.


젊은 시절을 지배하던 불안은

어느 순간 여유로 바뀌고,

그 여유는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만든다.



젊었을 때

내 외모 중 가장 자신 있던 부분은

손과 종아리였다.


미술을 전공하며

남녀가 유난히 편하게 지내던 학교를 다녔다.


어느 날,

치마를 입고 벤치에 앉아 있던 나를 보며

동기 남학생들이 말했다.


“너 소개팅 나가면 꼭 이렇게 앉아서 만나라.

너는 저중심 설계야.


첫 시선이 손이랑 다리로 먼저 가야 절대 유리해.”


과제를 하던 중에는

한 동기가 꽤 진지하게 말했다.


“밤마다 입시학원 알바 하지 말고

손 모델 알아보면 어때?”


어느 날 은행에서 대기하던 중,

소파 뒤로 누군가 작은 물건을 떨어뜨렸다.


어머나, 어쩌나 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분이

옆에 있던 아이에게 말했다.


“얘, 네가 저거 한번 꺼내볼래?”


지켜보다가

“제가 해볼게요” 하고 나섰다.

어른의 팔이 들어가기엔

꽤 좁고 깊은 틈이었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꺼내드렸다.


“어머나, 세상에.

어른 팔이 저기에 들어가네.”


그때의 나는

그런 순간들이

조금 자랑스러웠다.



20대의 기분 전환은

화려한 색의 매니큐어를 손톱에 바르는 일이었다.

그 시간 자체가

꽤 흡족했다.


그러다 30대가 시작될 즈음,

지금의 일을 시작했다.


처음 스트레스 중 하나가

조금 철없게도

이제 손톱을 기를 수도,

매니큐어를 바를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몇 해가 흐른 뒤,

선배 원장님이

문득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손목아지로

이 일 하느라 애쓴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한때 하루에

서른 명 전후의 얼굴을 몇 년간

관리한 적도 있다.


그 무렵

문득 내 손을 보았다.


점점 굵어지는 손가락 관절,

튀어나오는 힘줄.


하루 일을 마치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우려 하면

종아리는 빵빵하게 부어

마치 접히지 않는 소시지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교육장에서

나를 본 지인이 말했다.


“너도 이제 누가 봐도

에스테티션 몸이네.

처음 봤을 땐

다리 예쁜 사람이란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딱

이 일 하는 사람 다리야.”


씁쓸해할 틈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몇 해 전,

오랜만에 리조트로 여행을 떠나려는데

직원들이 깜짝 선물을 건넸다.


매니큐어 세트였다.


“모처럼 장기 여행이시잖아요.

자유롭게 손 치장해 보세요.”


참 다정한 배려였다.


집에 와서 발라보았지만

잠시 후 다시 지웠다.


손톱을 꾸미니

오히려 손이 더 거칠어 보였다.


얼마 전에는

조금 과시적으로

꾸미고 싶은 약속이 있어

깊숙이 넣어두었던 반지를 꺼내 끼워봤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다시 빼고

외출했다.



이제

예전의 ‘예쁜 손’에 대한 자부심은

내 삶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 대신

노동으로 다져진 손이 남았다.


그 과정에서

섭섭함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의 이 손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든다.


이 손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