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꾸 부엌으로 간다.
끓이고, 썰고, 무치고, 졸이며
냉장고 안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요리가 이제 내게 진짜 취미가 되었다는 걸.
어릴 적부터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후쿠오카로 이주한 뒤로는 조금 다른 마음.
스스로의 삶을 꾸릴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배우고 익혔다.
이 도시가 아니었다면
지금같이 집 요리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곳은 제철이 분명하고,
채소의 맛이 선명하다.
무엇보다 한국과 가까워서일까,
야채 맛이 어딘가 닮아 있다.
김치를 담그고 싶어지는 맛.
몇 년째 다니는 작은 야채 가게가 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노천 가게.
매일 아침 농가에서 직접 가져온 채소를
정성스럽게 펼쳐 놓는다.
나는 휴무일이면
수요일마다 그곳에 간다.
예전에는 슈퍼에 가기 전
일주일 식단을 먼저 적어갔다.
하지만 그 가게를 다니면서부터는
방식이 바뀌었다.
오늘 가게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그 채소에 맞춰 한 주의 메뉴를 정한다.
삶이 조금 느슨해졌다.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 가게는
근처 초등학교 아이들의 정류장이기도 하다.
하교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모여들고,
두 분은 일일이 “수고했다”라고 말을 건넨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내듯 이야기한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괜히 나까지 맑아진다.
쇼트커트를 한 나를 매주 칭찬 하셨다.
어느 날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에 왠지 부끄러워져
"그냥 이제 머리 짧아질 나이니까, "
라고 하자,
빙긋이 웃으며
“어,,, 내 안목 믿어도 돼.
이래 봬도 나, 예전엔 줄곧 패션 회사를 했어.”
지금은 소박한 야채가게 사장님이지만
젊은 시절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딱 50에 정리했지.”
옆에 계신 부인이 웃으며 덧붙였다.
“젊었을 땐 나도 같이 힙했다우.”
왜 그만두셨냐고 묻자
사장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좋아한 일은 거기까지로.
나한테는 돈이 안 되더라고.”
부인은 또 말했다.
“이 사람, 정리하자마자
시장에 나가 밑바닥부터 배웠어.
50 넘어서 젊은 사람들이랑 똑같이.”
그리고 이곳에서 16년.
나는 그 가게에서
모르는 채소의 요리법을 배우고,
남는 채소를 덤으로 받기도 하고,
내가 담근 김치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조용한 목소리로 사장님이 말했다.
“나, 3월 31일까지 하기로 했어.”
이 일대 임대료가 많이 올랐고,
세금 부담도 커졌고,
사람들은 예전만큼 채소를 사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나 이제 80이야.”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나 해 보고 싶은 봉사는 있어.
상품으로 못 나오는 좋은 채소를
학교 급식으로 이어볼까 생각 중이야.”
그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가게를
정말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우리는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었지만
마음 한편이 빈 듯 어딘가 어색했다.
이번 달부터 가게 앞에는
공지문이 붙었다.
이번 수요일,
채소를 계산하는데
사장님이 봉투 하나와 토종꿀을 건넸다.
“그동안 우리 재밌게 잘 지냈네요.”
집에 와 봉투를 열었다.
인생이 너무 빨랐다는 말.
남은 시간을 떠올린다는 말.
비록 존재 가치 작은 사람일 뿐이지만
남은 시간,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좋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말.
나는 또 울컥했다.
이번에는 섭섭함이 아니라
감사였다.
80대의 어른이
50대의 아직 부족한 어른에게
건네는 조용한 가르침 같았다.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