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시간을 멈추지 않는다



어릴 적,

일요일 해가 저물 무렵이면

설명하기 어려운 초조함이 찾아왔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월요일이라는 이름만으로

이미 무언가를 잃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는 그저 교실이었을 뿐인데,

어린 마음에도 그것은 작은 사회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주말이 끝난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어떤 질서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그 시간을 구해준 건

저녁 무렵 시작하던 외화 시리즈였다.

〈환상특급〉.


기묘하고 낯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

나는 잠시 시간의 감각을 잃었다.

저녁을 먹고, 이야기가 끝나면

어느새 월요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중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한 에피소드가 있다.


산업혁명 시대의 도시.

전등과 마차가 오가는 거리.

앞을 보지 못하는 한 귀부인이

죽기 전 잠시라도 세상을 보고 싶다며

명의를 찾아간다.


“몇 시간뿐입니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그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답한다.


수술은 성공한다.

처음으로 빛을 본 그녀는 흥분한 채 방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다시 어둠으로 잠긴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울다 지쳐 잠들어 버린다.


그 시각, 도시에는 정전이 일어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의 시야는 다시 환해져 있다.

빛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동안.


그녀는 기뻐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어둠이 찾아온다.


잠들어 있는 사이,

약속된 시간은 끝나 있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어릴 적 나는 그 결말이 아쉬웠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왜 확인해 보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빨리 절망해 버렸을까.


어른이 된 지금,

그 장면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잠시의 어둠을 영원으로 착각하는지.


때로는 “곧 괜찮아질 것”이라 믿지만

시간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도 흐른다.



슬픔. 어쩌면 그런 것일지 모른다.







나는 공원이 가까운 곳에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집 근처 오호리 공원을 자주 걷게 되었다.


도시가 만든 인공 호수

그 안에는 하루가 여러 얼굴로 존재한다.


이른 아침,

미래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시간.

그 안에 서 있으면

나 역시 어딘가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낮이 되면

공원은 다른 표정을 짓는다.

느긋한 산책, 개들의 발소리,

아이들의 웃음.


나른한 오후를 지나,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정리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공원의 리듬을 다시 바꾼다.


그곳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저 얼굴을 바꾼다.




이른 아침 시간대,

나는 한 쌍의 달리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

다른 한 사람은 가이드였다.

둘은 끈으로 연결된 채 같은 리듬으로 달렸다.


겉으로 보면

속도도 자세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시야를

다른 사람이 함께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은,

그들 곁에 두 명의 러너가 더 합류했다.

웃음과 격려가 오갔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시각장애인은 얼굴을 들어 햇살을 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지라도

빛을 향해 서 있는 자세는

누구보다 곧았다.



그리곤,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나는 또 다른 하얀 지팡이를 보았다.

신호는 바뀌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팔을 내밀었다.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신호음이 또 고장 났다며

퉁명함과 담담한 체념이 짙게 뭍은 표정을 한 채

길을 건넜다.


같은 날 아침,

확연히 다른 두 에너지를 경험한 채

나는 다시 걸으며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앞을 볼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자신은 없지만

바람은 선명하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누리기.

내 쓸모를 찾고,

도움을 청하고,

나의 몫을 해내며,

함께 가는 것.


슬픔은

빛이 사라지는 순간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나

그 안에 영원히 갇히는 것은 아니다.


슬픔은 시간을 멈추지 못한다.





어릴 적 일요일 저녁,

나는 아직 오지 않은 월요일의 부담을

한 편의 이야기에 기대어 건너갔다.


빛은 잠시일지라도,

리듬은 이어질 수 있다.


슬픔에 머물 수는 있어도

그 안에 갇히지는 않겠다는 것.


슬픔이 지금 내 안에 있을 수 있다.

내일 또 찾아올 수도 있다.

어쩌면 오래 함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슬픔과 나 사이에는

여전히 걷는 나의 발걸음이 있고,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리듬이 있고,

다른 얼굴의 시간이 있다.


슬픔은 시간을 멈추지 않는다.


나 역시

멈추지 않으려 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