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에너지가 넘치는 편도,
건강 체질도 아니었습니다.
얼핏 보면 약할 거 같은 인상.
그런데 이상하게도
크게 아파본 기억은 없습니다.
아파서 학교를 쉬어본 적도 없었고.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통증이나 고통에
빠르게 공감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과는
어쩐지 거리를 두게 되곤 했습니다.
그들의 감각이
저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몇 해 동안
한 달에 반나절 정도만 쉬며 일하던 시절,
설이나 추석처럼
긴장이 잠시 풀리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몸 어딘가가 급성으로 아파왔습니다.
그때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픔은 없다고 말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몸은 늘 버티고 있었지만,
긴장이 놓이는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 몫의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후쿠오카로 이주한 지
일 년 반쯤 되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큰 병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불편함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집 근처 내과를 찾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잠시
바로 돌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이 배경인 드라마 같은 공간,
두툼한 면 유니폼,
플라스틱 모자 같은 커다란 간호사 캡,
헌책방을 떠올리게 하는 재질의 환자 카드들.
게다가 진료실에 들어가자
적어도 아흔은 훌쩍 넘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엄청 무거워 보이는 청진기를 대며
선생님은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저는 애매한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감기 같기도 하고,
오래가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막 아픈 건 아닌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듣던 선생님이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이
조용히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병원은 특이하게도
내과와 정신과를 함께 보는 곳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때
몸보다 먼저 불안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입사 5년 차가 된 직원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말하며
조용히 퇴직서를 내밀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녀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우는 사람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서툰 사람입니다.
그래서
2주만 시간을 가져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의 자신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말했습니다.
2주 뒤, 금요일.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습니다.
그녀는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이 좋다는 것,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
다만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이 늘 불안했다고요.
저 역시
팀의 분위기와 협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 사람이 묵묵히 해온 노력과 성실함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말을 들을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안도와,
여전히 남아 있는 책임감이 뒤섞여
발걸음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해
절뚝거리는 듯 걸어갔습니다.
저는 여전히
타인의 아픔을 능숙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픔을 부정하지 않고,
서둘러 의미를 붙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적어도, 기다리는 사람은 되려고 합니다.
그날의 노의사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만큼은
의심하지 않는 사람.
저는 이제,
그런 태도를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