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근성을 각성하다

by miel




# 잠자던 승부근성을 깨운 하루



승부근성을 깨운 하루를 만났다. 이 마음은 성공이 아니라 패배에서 왔는데 그것도 내 눈앞에서 내가 적나라하게 경험하는 순간 닥쳐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승부근성을 갖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나의 감정을 뒤집고 평안함을 깨트리고 악해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승부근성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었다.


아주 오랜만에 승부근성을 느끼면서 감정은 파도에 배가 뒤집히듯 뒤집혔고 일순간 평안함이 깨졌다. 온몸에서 열이 올라왔으며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나의 상황을 말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성공을 향해서 내달리던 시기의 내가 드디어 돌아왔다. 그 순간 그동안에 이 행동을 하는 나를 억눌렀던 지난 시간을 생각해봤다. 이 감정을 억누른 이유가 분명 있었다.




# 분노조절장애 버튼



이유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체하지 못하고 감정을 표출했었고 감정은 기대를 져버린 충격과 성취감이 갖을 행복감의 상실이었다. 상실감들이 가라앉지 않고 겹겹이 쌓이던 시절이었고 너무나 삭막한 시간이었다. 욕심과 욕망이 차고 넘치던 시절이었다.


돌아보니 그때의 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던 내가 싫었고, 그 깊은 고독감이 싫어서였던 것 같다. 승부근성이 악하다고 생각했다. 승부근성을 누르고 평안을 누리며 살고자 했던 그 다음 시간은 패배의식과 열등감과 초라함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었고 그저 인생이 흐르는 데로 흘러가고 있었다.


엄청난 노력을 하는 시간은 너무나 고독했었다는 것을 최근에 느끼고 있다. 몇 전까지 이렇게 까지 우울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삶에 대하여 진지해지고 더 이상은 대충 살지 못하는 간절한 목적이 생기자 고독감이 계속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한 목적인 생긴 인생이 승부근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세상의 삶은 상대적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패배의식이나 열등감, 초라함은 사실 이젠 더 이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자존감이 형성되어 있다. 오히려 잠자던 승부근성이 깨워지는 것은 사랑하는 인간관계로 구성된 회사에서, 전업작가가 될 때까지 다녀야겠다는 다짐에 대한 약속 함께 글을 써가면서 각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오늘 작은 성공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큰 사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자 작은 성공의 기쁨은 이내 사라지고 마음에 이런 폭풍같은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의 삶은 역시 상대적이다.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의 글은 완전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이었다.




# 승부근성이 악이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승부근성을 가진 삶과 평안한 삶.

과연 어떤 삶이 바른 삶인가... 가끔 나는 너무 극과 극이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사고방식을 가질 때가 많아서 조심하고 신중하지 않으면 어느새 너무 극단적으로 선택해버렸음을 알고 식겁할 때가 있었다. 승부근성도 혹시 그렇게 도매급으로 처리하지는 않았던가...

승부근성 없이 살고 싶어서 평안한 삶을 찾아 헤매이던 시절이었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은 다시 이곳으로 나를 호출하였다.


세상에는 승부근성을 가져야만 하는 삶이 있다. 그 삶은 모두 악한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나의 모순점이 발견 되었다. 단지 내가 그 삶이 싫었을 뿐이었지 승부근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편안하게 살고 싶었던 나의 안일함도 편승해 있었다. 열정이 욕망이 되기 전까지가 아름답듯이 승부근성을 조절하는 내공을 갖지 못했다. 승부근성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감정에 휘둘려 버려서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내가 되어 버리고는 했던 것이다.


내 삶은 계속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승부근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승부근성이 성질이 악하다는 자기관념을 갖으며 삶을 무기력하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며 약하게 살아왔었다는 각성이 바로 오늘 드디어 일어났다. 물론 세게 맞은 인생의 세파에 견뎌낼 재간이 없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정상참작도 하고 싶다.



# 나의 삶이 승부근성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격이라는 평안함이 본질적으로 있어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향기이다. 삶에서는 하루 하루 성실해야 한다. 그것이 삶의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장하며 가는 치열한 현장을 무시하고 승부근성을 편협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승부근성의 악한 한 면을 핑계로 삶에 치열하지는 않았다고 돌아본다.


그 각성이 일어난 것은 본질적으로 바로 꿈 때문이었다. 작가가 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기필코 이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겠다고 결단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은 삶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가난한 선비처럼 글이나 읽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생계는 그처럼 인간은 강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인생의 소명은 도망갈 수 없게 가장 간절한 것에 목을 메고 온다.




# 글은 악할 수 없다



글은 내가 악해지게 하지 못한다. 악한 글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며 그 자체로 부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 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양심 때문인지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단점과 장점이 막연히 천정을 보며 사색할 때보다 더 객관적으로 드러난다. 글은 어쩌면 누구나 써야 하는 도구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삶의 이제 승부근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선을 넘지 않는 아름다운 승부를 보며 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생활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삶의 목적은 인격의 성장이다. 인격의 성장점은 어떤 현상적인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은 늘 평안을 향해야 하며 자존감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갖는 승부근성은 더욱 강하게 하고 지치지 않게 하는 에너지를 갖게 할 것이다.




# 그런 삶을 꿈꾸고 있구나



의 부족한 어떤 것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세상은 또 한 번 아무 감정도 없이 나와 부딪히며 경험하게 했을 뿐이다. 만약 오늘 완전히 성공했다면 행복했을까. 한 나절은 행복했겠지. 그리고 그 성공은 또 어떤 혹을 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다시 다음의 목표를 위해 다른 하루를 시작했겠지 말입니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늘 어떤 식으로든 목표가 기다리지 말입니다.


내일 더 큰 영광이 올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생각만 해도 좋은 전업작가가 되면, 지금 오늘의 성공과 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더 중요한 목적을 생각하니 패배감이 스스로 작아졌다.

역시 상대적이어야 그 우물에서 벗어나는구나...


전업작가가 되면 또 판매부수에 전전긍긍하겠고, 다음 출간 계획을 위해 골머리가 아프겠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하는 일들이라서 덜 고통스러울 뿐일 것이고 어쩌면 낭만적이기도 할 거야. 하... 그런 삶을 꿈꾸고 있구나. 그때까지 계속 단련의 과정을 거칠 나를 위로 해가며 가기로 다짐도 잊지 않는다.

나의 꿈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