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에 수포가 생기고 혓바늘이 돋았다. 다행히도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근무하는 환경이어서 나는 매일 힘들게 퇴근하여도 다시 아침에 웃는 나를 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순간순간 오늘을 반성한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글로 써보기도 한다.
그 대안을 실행하기 위해서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늘 그렇듯이 나는 대안의 50% 정도만 실천하고 성장한다. 그 이상은 잘 가지지 못한다. 그만큼 쉬운 것이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성장한다는 것에 나오는 기쁨에 있다는 것이다. 나의 시각은 나의 시선은 바로 이 지점을 보고 있다.
내 주위에 선배들은 모두 선수들이다. 프로들이다. 나는 세일즈가 정말 싫어서 도망 다니다가 결국 돌아온 곳이기에 제대로 훈련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열심히 무식하게 열심히 였을 뿐이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되겠지. 뭐 이런 마음이었었고 계속 실패했었다.
나의 교만은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 무척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것은 한때 최고의 자리에 올랐었던 곳에서 나는 완전히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은 내가 그 교만을 내려놓을 때까지 헤매게 하셨다. 또한 그 교만과 자존감을 분리해서 알아들을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는데 그것이 10년이라는 시간이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쉬운 방법은 잘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렵게 돌아서만 다녔다.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의 이 여유와 세상의 유혹에 무관심한 내가 언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게 나는 성장해있다. 그리고 여유로워지고 평안해졌다. 아마 10년의 고난의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의 키가 자랐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20대, 30대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시절의 혼돈과 방황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시대에 글도 제대로 쓸 수 없었을 거라 생각도 든다. 차분하게 앉아서 나를 성찰하는 것이 너무 답답했던, 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0대에 글을 계속 쓰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는데 이젠 내가 걸어온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이었다는, 최상이었다는 결론을 내는 것이 아마도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마 계속 쓰지 못하고 중단하기를 반복했을 것 같고,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몰랐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시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상하게 누군가에게 그 말을 계속 듣고 싶었다. 지난달과 어제와 오늘을 보니 내가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그게 나 혼자 자화자찬인가 싶었다. 누군가가 너 진짜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듣고 싶었다. 계속 동료들에게 리더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해주기를...
바로 어제 옆에 프로 중의 프로인 언니가 내가 힘들까 봐 걱정됐던지 퇴근 후전화가 왔다. 언니 언니 나 좀 나아지지 않았어? 라고 물었고 그렇잖아도 그랬더란다. 히히히. 엎드려 절 받기 후 통화를 종료하고 나는 내가 간절히 누군가의 디테일한 칭찬과 격려에 고파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나는 엄청난 기쁨이 올라올 것 같았다. 스스로가 칭찬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것은 객관성을 획득하고 싶어 하는 심리인 모양이었다.
그래ㅡ 사는 데 있어서 정말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매일 하루 어느 정도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수많은 감정들이 순환한다. 우리에게 하루는 무엇을 시도하고 도전하고 작은 결론을 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것에 만약 어떤 발전이 없다면 마음은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것은 큰 성공이 아니다. 큰 성공은 하루 반나절 정도의 기쁨을 줄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매일의 작은 성공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난 성취감과 작은 발전을 이룬 일들의 성장 가능성에 우리는 희망을 매달고 다음을 기대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여, 전쟁에 승리할 사기를 충전한다.
그동안 돌아보면 난 나의 본케와 부케의 분리 사고를 하지 못한 혼란이 있었던 인생이었다. 완전히 다른 내가 되어야 했지만 나는 전쟁터에서 너무 낭만적이었으며 감성적이었으며 너무 나약하고 유약하였다. 나의 본질은 이러한 사람이 맞지만 글을 쓰는 나에게 맞는 성향이지만, 그 직업에 맞는 사람에 맞게 나는 변하지 못하고 바뀌지 못하고 계속되는 모순으로 인해 부딪히고 좌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나는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전쟁터에서 쉬는 시간에서도 나처럼 위로와 격려와 사랑은 가장 중요하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에 집중에 있어서는 다른 차원이었다. 일은 이성적이어야 하고 그 일에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는 게 좀 부끄럽고 방황의 이유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으로 예술을 하며 살아야겠지만 현재는 본케와 부케를 둘 다 영위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본케가 부케를 의지하고, 부케가 본케를 의지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둘 다에게 모두 긍정적이고 이롭다. 생각지 못한 영향력이었다. 그러나 이 둘을 또한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본케일때는 본케여야 하고 부케일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의도와 다르게 세일즈를 택하게 됐던 삶은, 작가라는 직업이 처음부터 수입을 주어지지 않음으로 부케를 겸하며 가야 한다는 것을 나의 인생은 이미 알고 나를 이끌고 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단지 나만 몰랐을 뿐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쪘든 나는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 나는 자신에게 이미 무의식적에게말하고 있다. 매일 10센치 쯤은 성장해가고 있다고.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