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사고의 감성법

by miel





# 철저히 이성적일 것. 철저히 감성적일 것.



과열된 경쟁시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에서는 철저히 이성적일 것과 집에서는 철저히 감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은 생계를 위해서고 감성은 나의 인생을 위해서다. 둘 다 삶에게는 너무 중요한 영역이고 영역들 각자는 고도의 집중을 요구한다. 현대에 직장에서 겨우 먹고사는 정도의 실력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글을 쓰는 것 역시 대충해서 작가다운 작가가 될리가 만무하다.


한 가지만으로 만족하고 살 수 있는 성향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장만 다니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었기에 이 늦은 나이에 자아의 행복을 위해 글을 쓰기고 했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직장의 피곤함을 가진 채로 책상 앞에 앉아서 정신적 노동을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어찌어찌 시스템이 다행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 매일 경계를 넘나들며 산다는 것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망정이지 좋아하지 않은 일은 성향상 절대 못할 일이다. 정신적 영역의 분산투자라는 것은 마인드 컨트롤을 의도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경계를 넘어가는 시점에 약간 혼란의 순간이 일어난다. 의식의 전환이라는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뭐 이제 시작이니까.


의식의 전환 사이에는 출퇴근 길이 있다. 출근길은 기도시간이며 퇴근길은 직장에서 쌓은 많은 일들을 비우고 감성적인 자아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이 시스템을 적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경계가 모호하여 집앞에서도 회사업무들이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 꾸역꾸역 서둘러 지우고자 애를 쓰곤 한다. 집에서 회사 걱정은 쓸데없는 일 중에 쓸데없는 일이다.




#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군



누군가의 혹은 배우자의 지원으로 작가 준비만 올인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도 삶을 부딪히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어려운 점 또한 있을 거라 생각을 한다. 연구가 깊어져서 좋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산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어떤 인생이든 쉬운 인생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선택이든 선택하지 않는 길이 있고 포기한 것이 있게 마련이므로 말이다.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한 인간인 나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인데 이 둘은 일치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감수하고 살아가는 길은 굉장히 힘들고 고단한 길을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수능을 준비하는 느낌처럼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만을 집중하며 살아간다. 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정말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재미를 포기하고 대학입시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간다.

흡사 나는 가끔 그들과 비교를 가끔 한다. 그들의 노력과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은 내게도 많은 반성을 하고 노력을 하게 한다.


어쩌면 인생은 수능을 준비하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방식을 원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치열한 삶을 살지 않으면 어느 지점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는 그런 삶이 가능하다. 밤을 새도 힘들지 않은 기쁨이 잠잠히 잠겨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말이다. 그리고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마음도 준다. 좋아하는 일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있다. 인생을 모두 품을 수 있는.




# 치열한 삶에서 나오는 글



결국 감성법을 위해 분리 사고 룰 한다. 감성법을 위해 분산투자를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바로 감성적인 삶의 전체화이다. 모든 삶이 감성적인 삶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오늘 하늘은 어찌 그리 감동적인지 그야말로 하늘색 도화지에 흰색 솜사탕이 띄엄띄엄 놓아져 있는데 너무 천연한 세상이었다. 공원길 나뭇잎 사이로 태양빛이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한 빛이 쏟아지고 이 선선한 공기에 너무 완벽한 휴일이었다.


이 삶은 나에게 글 쓰는 자의 치열함과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갖는 많은 희로애락 속에서 부딪히는 감정들을 무지개처럼 다양하게 반사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한다. 몇십 년 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사건사고를 통한 경험과 연륜이 없었다면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생의 현실적인 단면들 속에서 내면을 뚫고 들어가고 싶은 글의 세계는 <그래, 이 삶이 맞았던 거야> 라고 응답하는 듯하다.




# 작가적 삶은 고단함이 숙명



그동안 살아온 많은 고단함이 뭔가 내가 잘못 살아온 듯한 인상을 주지만 결국 그 역사가 나로 하여금 글을 쓸 수 있게 하였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나는 가야 할 길을 나도 모르게 잘 걸어온 것이다. 아픔을 겪지 않고 아픔을 동감할 수 있을까... 상처가 없는 사람이 상처를 공감할 수 있을까... 내 경험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성직자들이 거의 죽기 직전에 계시를 받은 경우가 많듯이 인생을 통찰하는 업을 가진 자의 숙명은 고통의 바다를 누구보다 더 많이 헤엄치는 방법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분리 사고의 감성 법을 더욱 연마시켜야 한다. 이 삶이야 말로 아주 이상적인 작가적 삶의 한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편안할 수 없으며 냉철하게 분리 사고하고 분산 투자해야 하며, 철저히 자신의 삶의 긴장성을 유지해야 만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업작가가 되기를 엄청나게 기대했으나 이렇게 깊이 들여다보니 지금도 낫 배드 다는 느낌이 스쳤다. 이런 삶도 작가에게 나쁘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고단함을 피하지 않아야 하는 정말 미친듯이 좋아야 갈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