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의는 어떻게 결합하는가

by miel




# 사랑과 정의가 부딪힐 때



사랑과 정의가 부딪히며 혼란이 일어났다. 어떤 문제든 늘 그렇게 온다.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누군가는 상처를 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러나 상처가 무서운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평생 남을 말은 굉장히 조심하고 조심해서 신중하고 신중해서 해야 한다.


용서는 끝이 없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하셨듯이 용서라는 것의 기준은 없는 것 같다. 갈등이나 분쟁을 싫어하는 나는 상대의 불쾌한 말에 대하여 그냥 넘어간다. 물론 나 역시도 상대에게 불쾌한 기분으로 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예전에 그러던 청춘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를 쓰고 애를 쓰며 넘어가고 넘어간다. 용서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 삶의 어려움은 인간관계의 어려움



그저 서로 성격이 안 맞고 성향이 안 맞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냥 용납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떤 죄라는 차원이 아니다. 다름이라는 차원으로 포용한다. 이해하고 인정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므로 말이다.

중요하지 않는 문제는 끝없이 용서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며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충분히 실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는 심각한 경우가 있다. 씻을 수 없는 인격의 상처를 주는 경우가 그것이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도리를 무시하는 문제는 아주 다른 차원이다. 이는 무시하는 사람의 인격에 굉장히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다. 봉사하는 교사에게 배울 것이 없으니 더 이상 당신의 가르침을 받지 않겠다는 난생처음 만난 학생의 언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판단을 할 수 없었다.



# 신중하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섣부른 행동은 아직 성인이 아닌 학생에게 심각한 인격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신중해져야 했다. 용서하는 것이 먼저이지 지적하는 것이 먼저는 아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류애적인 사랑이 아닌 다른반 아이 객체를 구체적으로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사랑의 조언이 아닌 분노의 조언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더 신중하기로 했다. 아니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감정이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대응 없이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그 학생은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다시 다른 선생에게도 누구에게도 예의 없는 행동을 취하였다. 이 문제가 이렇게 끝나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다.




# 그 아이의 삶에 정의를 수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를 수호하는 것은 우리의 세대의 임무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은 정의를 배울 수 없다. 정의가 대단한 부류의 것들도 있지만, 가장 먼저 일차적으로 한 개인의 인간적이고 기본적인 도리를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은 가르치는 자로서의 의무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정의가 수호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단지 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행동을 강요할 수 없다. 단지 최대한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서 인지시켜 줄 뿐이다. 소금은 음식의 부패를 막는다. 그런데 음식이 너무 많으면 작은 소금은 부패를 막을 수 없다. 더 많은 양의 소금이 필요하다. 아마도 더 많은 양의 소금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기 시작했다. 농도가 더 강해져야 했다.




# 사랑을 품은 단호함


사랑인가 정의인가를 고민했었다. 역시 정의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하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다. 사랑을 가진 정의여야 한다. 용서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 기반에서 정의를 세워야 한다. 이 둘은 양립되어야 한다. 둘 중의 하나가 아니다. 먼저는 사랑이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 아이가 변화되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어떤 액션을 취해져야 한다.

사랑은 무조건 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잘못된 것에 투쟁하듯 단호하듯이.

상대가 치명적인 비윤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호히 지적해줘서 불쾌하더라도 인지시켜줘야 한다.

거기엔 그를 인간적으로 훌륭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미워하는 것이고 화풀이 이며 또 정의를 세우고자 관계가 깨지는 상황으로 악화된다. 하나의 입장에 대한 관철일 뿐이다.



# 마음에 있는 것이 사랑인가, 미움인가


겉으로 보면 똑같지만 두 가지 마음은 전혀 다른, 완전히 다른 극과 극의 차원이다.

마음에 사랑이 있느냐. 미움이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지적받는 상대는 그의 언변에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담긴 지적은 언젠가는 돌아보게 된다. 미움이 담긴 지적은 분노를 양산한다. 사람의 분노는 반드시 몸에 악성 바이러스를 만들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화풀이로 간다. 그러기에 아주 신중하고 깊은 묵상과 기도로 그 사안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며 깊은 묵상이 진행된다. 내 마음에 사랑이 차오르게 해야 한다.




#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인간관계의 룰은 정의이다



회의를 통해 문제에 대한 공유, 공감, 대안의 합의를 이루어낸다.

만남을 통하여 다정하고 차분하고 조용한 말로 대화를 해야한다.

문제의 아이와 대화를 통하여 사제관계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관계에 기준을 이야기 하고 그 기준에 대해 동의를 얻고, 혹은 동의를 하지 않으면 기준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고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인지시켜준다.


물론 거의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까지 온 것일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동의가 아니다. 인지시키는 것이다. 인지시켜주는 것은 지금 당장 인정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있는 인생을 통하여 언젠가는 깨닫게 한다. 평생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삶이 그를 다스릴 것이다. 지금 원하는 것은 다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인생은 반드시 자신의 행동의 대가가 따른다. 인생이 하는 것은 인생에게 맡기고 그저 반드시 사랑을 담고 말을 해줄 뿐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