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by miel


# 훅 들어온 메일


어? 이거 뭐지? 혹시...

작가 승인의 합격 메일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휴대폰에 툭 들어왔다.

나는 지금도 마음껏 기뻐하지 않는 내 모습이 조금 아쉽다. 아마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승인되지 못해 전날까지 다시 글을 쓰고 탈고를 하다가 머리가 아파서,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비우며 누워 너튜브를 보고 있다가 알게 된 소식이다. 사실 오늘 작가 승인이 나지 않았다면 이제 혼란기에 접어들었을 시점이다. 아직 너무나 부족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은, 얕은 절망을 느꼈을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조용히 아무렇지도 않게 발송된 메일이 나를 구원하여 주었다.

주변에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던 이들에게 승인 소식을 캡처해서 카톡을 보냈다.

고등학교 문학 동아리 은사님께도 문자를 보내드렸다.

이제 진짜 작가가 되기 위한 시작을 하는 내게 신이 주시는 응원가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거 나 기뻐해도 되는 거지. 야호!!! 하하하하


# 나 같은 건 안될 거야


고등학교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꿈에 열망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 꿈에 대하여 소홀히 대했으며 무시했다. 그 본질은 내가 나 자신을 무시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감히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작가가 되는 게 굉장히 어렵다던데, 작가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어차피 생계를 꾸려야 한다. 이런 생각들에 꿈이 묶였고 멀어지게 됐다. 글쟁이의 궁핍을 피한 나의 삶은 너무 어이없고 아이러니하게 어렵고 버거웠다.


몇 번의 연애와 몇 번의 이별을 했다.

결혼을 해봤고, 이혼을 해봤고, 작은 성공도 했고, 작은 부도도 치렀다. 그 여파로 열 군데가 넘는 직장을 옮겨 다녀야 했으며,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거나,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의 족히 80%는 고통의 분량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안 풀릴 수 있을까 싶은 삶이었다.


문창과를 나와 꾸준히 글을 쓰면서 작가를 준비했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 승인이 나지 않았다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상상이다. 아마 지금처럼 많은 경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머릿속으로만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책으로 경험을 하며, 조금은 교만하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고 성공만을 목표로 글을 썼을 것이며, 인생의 깊은 골짜기는 한두 번 가보고는 쉬운 길로만 갔을 것 같다.


# 인생이 반전되었습니다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이 경험들이 오히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하여 걱정하지는 않게 되는 전화위복의 상황이 되었다. 시련의 경험이 나의 글감들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작가가 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고난의 삶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다시 똑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이게 곤란한 것이다.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불행을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혹시 작가가 되기 위한 운명 같은 시절이었을까 위안하며 지내왔는데 이젠 완전히 믿게 되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노라고 말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진 느낌이다. 인생은 믿음대로 어떤 식으로든 길을 내며 간다.


먼저 거의 매일 글을 써야겠다고 계획한다. 그리고 매일 책을 읽거나 오디오북을 듣고, 모든 매체를 작가적 관점에서 트렌드와 광고 카피까지도 주의 깊게 보고 좋은 낱말, 문장은 메모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든 삶에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그 소재들에 대하여 묵상을 가장 많이 하며 글을 써나가기로 한다.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이어서 인문고전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이해 할 수 없었던 그 천재들의 글들에 대해 알고 싶음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민하고 민감한 나의 성향은 글을 쓰게 할 것이고 세상에서 흠이 되었던 나의 단점은 이제 장점이 되리라.


내 인생을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한 순간 한순간 유쾌하지만 신중하게 엮고 싶다. 하루하루 깊고 향기 나는 멋진 삶으로 만들고 싶다. 살아온 세월의 깨달음을 최대한 객관화하여 글로 만들고 싶다. 쉽게 살기보다 깊고 넓게 살고 싶다. 게으른 행복이 아니라 부지런한 행복을 지향하며 살고 싶다. 내 글이 누군가의 인생의 성장을 위한 한 줄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지금의 시대는 너무나 다양한 직업이 많아서 자신의 특성을 잘 들여다 보고, 그 특성에 맞는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가능해진 것 같다. 나의 성향이 감성주의적 성향이고, 다른 직업이 거의 맞지 않는 것을 빨리 파악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분석했더라면, 내 주위에 그걸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필사적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매달렸을 것이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길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이젠 그걸 말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작가가 되기로 결정함으로써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만 작가로서의 나는 더욱 사랑한다. 모든 일들이 맞지 않고, 낯설고, 즐겁지 않았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글 쓰는 작업은 머리가 아파도 즐겁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이 도파민은 아마도 계속 나오게 될 것 같다. 30년 동안 꿈꿔왔던 소원이 이뤄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인생을 살게 되면서 직업과 봉사의 삶을 더 깊은 애정으로 해나갈 수 있을 에너지가 나에게로 와주었다.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한 사건이다.

와우!! 새로운 세상이 내게 와주었다. 이제 시작이다.

이전 02화잠이 오지 않았던 특별한 시작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