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 보는 것은 죽어도 못하는 인간
사고형 인간인 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진짜 열심히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습성이 되어 있다. 한 마디로 게으른 사람이다. 조금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변명을 하자면 하루 종일 생각하기가 바빠서 해야 할 일을 최소화 한다.
가끔 부지런한 사람을 만나면 정말 부끄러워진다. 그들은 둘다를 너무 잘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이 게으름을 이겨낸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손해 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편리한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위해 게으름을 딱 그 부분에서만 바꾼 것이다. 하하하.
# 고달플수록 인간에게 이롭다
전반적 습관은 게으름이다. 어쩌면 내가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팔 할은 게으름과의 사투였었다. 출근하기 싫은 날이 출근하고 싶은 날보다 많았고, 교회가기 싫은 날이 교회가고 싶은 날보다 많았다. 약속을 정해놓고 약속을 왜 정했지? 그냥 집에서 있을껄 하던 때도 수없이 많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과거형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출근하는 것이 즐겁고, 교회가는 것도 의지한다. 그리고 약속은 거의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만나는 관계외의 관계는 거의 맺지 않고 지낸다. 원래 집순이었다는 내 본성을 알았고, 또 글쓰기 위해서도 시간을 아껴야 한다.
# 게으름에서 탄생한 자본주의
평생 성실하기 싫어서 불로소득을 염원하고, 귀찮아서 다른 사람의 번거로움을 눈감기도 하고, 다른 부서에 토스하기도 하며 변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보니 게으름은 인간에게 지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노동은 당연한 것이며, 노동의 대가로 우리는 삶을 영위하도록 생산하게 만들어져 있다.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노동의 대가를 본인이 갖는다. 자본주의는 그런 구조가 합법화 되어있다. 대기업이 그런 구조의 표본이다. 주식시장의 개미와 기관, 작전들의 관계 같은 경우는 불법적인것 같지만 거의 편법적이다. 그래서 게으름이 사회의식으로 들어가면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적 노동의 대가도 노동의 대가이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정신적 노동의 대가가 가치 형성이 되어있다는 것이고, 거시적으로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 피해 주는 건 더 싫어
어쩠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게으름을 경계한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제어장치이다. 정신적 고통이 물질적 만족보다 더 크고 오래가며 스스로의 경멸이 느껴지는 데까지 가버리기 때문에 극도로 경계하면서 살다 보니 게으름이 어느 부분에서는 달아나 버렸다. 게으름보다 더 싫은 것을 찾으면 게으름을 이기게 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랑하는 것들에 대하여서 만큼은 게으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게으르지 않으려면 어떤 무엇을 진짜 좋아하게 되면 되는 것이다. 가끔 나는 이 원리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글쓰기이고 책 읽기이고 좋은 인격이 되는 것이고 감성에 젖는 것이며 사색하는 것이다.
# 낙관의 힘이 가장 세다
아니다.
좋아했지만 그동안 글쓰기가 루틴화 되지 못했던 것을 보면 보다 근본적으로는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힘 때문이았던 것 같다.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낙관, 행복할 수 있겠다는 낙관, 성장할 수 있겠다는 낙관. 그 희망이 나를 게으름에서 부지런함으로 이동시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낙관은 방향을 제시 하기도 하고,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 선하게 하기도 하고, 행복하게 하기도 하는 구나라고 생각되니 깜짝 놀랍다. 낙관은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지니고 다녀야 할 행복의 관념이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은 부정과 공포에 질리면 이성을 상실하고, 인간성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 오직 자신과와의 싸움
그리하여 나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몸을 고달플수록 인간에게는 이롭다는 거였다. 도대체 인간은 이렇게 이로운 부지런함을 두고 왜 편하고만 싶은 걸까... 에너지를 쓰는 것을 인간은 싫어하는 것인가... 힘이 들기 때문일것이다. 힘이 드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싫어 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것은 자신을 인격에서 멀어지게 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는 현상적이고 근시안적인 생각이 된다.
좋다. 그렇다면 부지런하기 위해서 작은 투쟁을 하고 가자. 인간의 투쟁은 타인이 아니라 오직 자신과 해야한다. 그래야 진짜 승리할 수 있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자신을 이기며 산다면 미래가 어찌 되든 좋은 것이다. 그 사람이 훌륭한 인생을 살아낸 것은 확실하다.
# 부지런하게 움직인 하루가 쌓여
계산적이고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그래서 막막한 오늘보다, 낙관하며 희망하고 바보처럼 웃으며 부지런하게 움직인 오늘이 훨씬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다. 미래가 더 잘 될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적당한 긴장과 사색은 하되 그것이 부정적인 데까지 선을 넘어 가지 말자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살았다면 미래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 우리는 미래가 아니라 단지 오늘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도 알 수 없는 미래는 낙관하고, 그래서 너무 좋은 것에 좋아해야 하는 것에,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고 걸어가자. 하루 한걸음 한걸음 지치니 너무 뛰지만 말고, 페이스 조절하며 뚜벅뚜벅 가자.
그래도 꿈꾸었던 오늘이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