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이며 한없이 어리석은

by miel






사람의 지식은 최고를 향하여 나아간다. 어떤 분야이건 최고의 권위자가 있으며 그들은 석학이나 천재라는 이름으로 추앙받는다. 어찌 보면 인간은 태어나 배우다가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완전한 단계는 인간에게 없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개인인 나는 어떠한가.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다고 소우주가 아닌 것은 아니다. 끝없이 깊은 인간 내면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으며 간혹 나의 마음과 생각의 원인을 알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내가 왜 이러는지 왜 이런 감성이 가는지 왜 이런 판단을 하는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하고 우리는 반응하고 움직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대응을 하기도 하지만 경험과 뼈아픈 깨달음을 통하여 다시는 실수하지 않게 되는 연륜이라는 것이 획득한다. 단지 그것을 글로 쓰느냐 암묵적으로 알고 있느냐의 차이이기도 하고, 기억너머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매일 양식을 먹어야 하고, 누구나 잠을 자고, 누구나 화장실을 다녀온다. 누구나 똑같이 반복적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누구든 맛있는 음식에 감탄하고, 누구든 고민을 하고 있으며 누구든 불안을 가지며 누구든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유한한 한계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아무리 고차원적인 수준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서도 어리석음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간극은 크면 클수록 간극만큼의 고통의 크기가 비례한다.


자신이 인간의 고상하고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손치더라도 불안정하거나 정서적 위험성을 자각하면 동물적 본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이성을 잃게 되곤 하며 인간에게 비참함과 수치심과 모멸감을 조장한다. 그뿐 아니라 인간의 몇 가지 본능적 욕구는 스스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며 , 그로 인하여 인간을 한없이 초라하게 하고 동물적인 정체성 출현으로 인간 삶에 대한 환멸과 동시에 극강의 단계에서 모든 것에 무릎 꿇게 한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갖는 인간의 한계의 어리석음이다. 인간 자신의 탓만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한 없이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몸체를 한없이 작아지게 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만물의 최고의 권위를 가진 존재임을 그리고 가장 고상한 존재임을 자각하며 살 것인가...


두 가지 삶의 방식 모두 인간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지 않는다. 이 역설이 끊임없이 삶의 매 순간마다 수면 위로 떠올라 충돌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초라하였고 오늘은 위대하였으며 내일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겸손과 교만 사이를 줄타기하며 접점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이 교만이 되지 않았는가... 모른다는 것에 휘둘려 자신을 한없이 어리석다고 한심해하지 않았는가... 매일이 그렇다. 매일매일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자존감 인듯한 교만과 현실속에서 초라해지는 겸손 같은 초라함 사이를 왔다 갔다 오고 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어쩌면 접점들을 찾아 들어가는 게임.

부족함은 나를 각성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그러나 열등감을 확장시킨다. 자존감은 만족감을 주지만 교만으로 올라가기도 하는 것이기에 많은 것들이 그렇듯 양날의 검 같은 것이다

나는 인생이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행복해짐을 깨닫는다. 한없는 진지함 조차 하나의 게임의 방식일 뿐이다. 인생의 완전히 좋은 것은 없다. 또한 인생에 완전히 최악은 없다. 어떤 인간은 완전히 최악 속에서 완전한 행복을 획득해내기도 한다. 드문 일이지만 말이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게임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누구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을 믿는 사람은 창조주에게 따질 수 없고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은 허공에 따질 수 없다. 게임 조건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며 우리에게 주어진 전제조건이다. 단지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행복을 찾아 나설 뿐이다.


또한 인간은 그리하여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완전한 행복을 누군가에게 증명할 수 없다. 행복에 객관적인 근거 자료라는 것은 과학에는 없다. 인간은 과학 속에서 살지만 실질적으로는 비과학에서 산다. 인간은 사랑 안에서 살기를 갈망하고 인간은 행복 안에서 살기를 염원한다.


그래서 인간은 소우주이며 누구도 완전히 실제 우주 뿐만 아니라 그 소우주조차 영원히 알 수 없고, 당장 지금 이 후조차 알지 못하는 그리하여 인간은 다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인 인생 속에서, 극히 주관적인 인간의 정체성의 이유로 인간은 어리석다. 앞으로도 주욱 이 소우주는 어리석을 예정이다. 책상 앞에 너무나 흔한 문구를 포스트 잇으로 붙여 놓았다. 인간의 이 숙명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색의 끝에 이 결론이 남았었다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문구 하나가 기막히게, 즐기는 오늘을 만들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했다. 아주 주관적으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