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은 곧 나다. 나는 예술가다. 다른 이들은 내가 예술가가 될까라고 하지만 나에게 나는 예술가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를 분명히 느끼고 괴로워하고 방황한 시간들이 충분하였다. 더 이상 고민할 가치가 없다.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것 자체가 나에게는 곤욕이고 스트레스이다.
나의 감성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에서도, 출근하는 차 안에서도 음악을 찾으며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를 꿈꾼다. 물론 회사에서는 일에 집중하지만 그리고 곧잘 성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충만하지 않으며 도대체 무엇을 찾는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듯한 이 심정은 세상의 끝에 서서 있는 듯한 아니 이 세상의 처음과 끝을 한 눈으로 보는 듯한 건방짐으로 이성을 뚫어버린다.
쉴 새 없는 업무와 움직이는 생활 속에서 급하게 마음먹고 써 내려간 글들은, 이 세상도 아니고 다른 세상도 아닌 어중간하게 끼어버린 옷자락이고, 드디어 나는 완전히 탈출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며 서성이는 나를 보았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완전히 나는 다른 세상으로 가야만 한다.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새로운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새롭지 않은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모두 다른 세상을 왔다 갔다 하며 떠돌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게 누군가가 막아놓았다.
그 이름은 체면이요 그 이름은 상처요 그 이름은 외피이다.
언제라도 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어느 지하 1층에서 감성을 만나고 싶다. 이 세상에 누군가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렸어도 나이 들었어도 그저 사람으로 만나고 싶은 고독감을 지고 산다.
나는 그 누군가를 알고 있다. 그 누군가는 나이기로 하고 너이기도 하며 여리기도 하며 지독하기도 하며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자신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날을 무수히 넘긴 사람이다. 이 세상이 너무나도 어색하지만 살아가는, 사실은 너무나도 미약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자 고대했으나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가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어느 것도 더 이상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단지 씁쓸하고 달콤한 Creep 이나 Piano Man을 들으며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아무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아무 말이 필요 없고 싶을 뿐이다. 글의 모든 벽을 허물고 나의 모든 가식을 허물고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존재임을 우린 알고 있기에 그저 서로의 모양을 인식할 뿐이다. 판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글은 그런 상대다. 내 마음이 글에게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다.
그래서 이렇게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용히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고양이 같은 존재이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언제까지 갈 것인지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갇혀 있다가 풀려난 이 감성들에게 오늘을 풀어줄 뿐이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들어줄 뿐인 것이다. 나는 이성적인 글이 싫었다. 의무적이고 도식적이고 자기 계발적이고 교과서 같은 글들임을 알고 싫어졌다. 그런 글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회사에서 나를 보는 것 같아 피곤해졌다. 감성을 풀어주고자 했는데 감성이 여전히 갇혀있는 모양새다.
글에서는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글에서는 방향도 목적도 정하고 싶지 않다. 글에서는 긴장도 압박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러려고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할 때도 많지만, 말하고 싶은 것을 나는 쓰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쓸 때 나는 비로소 답답한 뇌 속에 갇혔던 감성이 해방된다. 수많은 차들의 행렬 속에서도 저 신호등의 멈춘 시간 속에서도 우리의 감성은 살아서 펄덕인다. 원래 인간은 나였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인간이다. 나는. miel 나를 글 속의 세상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시오
이태원 참사에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낍니다.
삼가 고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