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브런치 작가 승인을 기점으로 나에게 수많은 축복이 몰려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축복은 직장의 축복이었다. 직장이란 무엇인가... 생계라는 것이다. 생계가 안정되면 모든 것은 그 토대 위에서 성을 쌓게 마련이다. 인간에게 시련이라는 것은 생계가 안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건강하지 않은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안정감은 생계만으로 오지 않는다. 어디에서 부터 기인하는가를 보면,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존재감을 확인받게 되고, 나라는 인간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 세상 속에서 기록된다는 것에서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재 이유를 확인 받았다는 것에서 시작일 것이다.
그 만족감이 내 삶에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일까... 8월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 것이 확실하다.
8월에 새 직장에 입사했으며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 성공의 원인이 무엇일까
우선은 몇 년간의 어려움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재정이 안정되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는 것이며, 새로운 회사는 성과를 잘 낼 수 있는 조건의 좋은 회사로 가는 행운을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예전의 사랑의 능력이 대단한 리더에게 다시 갔을 뿐인데 인생은 내게 행운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내가 직장을 다닌 중에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퇴근을 하면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나는 감히, 누가 나보다 기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리를 하자면 시련을 견디며 온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이 나를 성숙하게 하였고, 그 시간 속에서 어느 정도의 재정이 준비되는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서로 사랑하는 동료관계를 재회를 통하여 회복했으며, 그 재회 속에 행운이 함께 들어있었고, 나 역시 직장의 안정과 자아의 실현을 위해 노력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결론 속에서 시간이라는 조건과 그것을 견디는 나라는 인간의 낙관을, 그리고 언젠가는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오는 신의 뜻이 일치되는 때가 비로소 도래했음을 깨닫는다. 수많은 확률이라는 과정 속에서 나 역시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많은 실수를 하며 알맞은 곳을 찾아 헤맸기에 때문에 만났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이 이런 결론이라면 결코 인생은 비극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단지 우리에겐 아직 때가 도래하지 않았을 뿐이고, 그 행운의 신이 아직 오고 있는 중이고, 나의 노력이 아직 좀 더 되면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끝이 확실한 희망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게다가 시련 뒤에 오는 만족감의 행복은 감사를 동반한다. 그동안 살아왔던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나는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과 비교했을 때 그 기쁨과 감격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누가 나보다 기쁠 수 있을까라고 하는 말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삶은 완벽하며 더 이상 어떤 틀을 변경시키거나 변형시키거나 전혀 다른 구조를 형성시킬 필요가 없는 시점이 50이라는 나이의 시점에 온 것이다. 그래 나쁘지 않다. 60이라는 나이보다는 아직 에너지가 있고, 시간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40이라는 나이에 왔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렇게 감격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25년간 공무원 생활만 하는 동생이 평탄하기는 하여도 감격스러워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변명 같지만 변명은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는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해봤기에 그분들에게 불평을 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운전하는 일을 해보았기에 위험한 운전 차량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는다.
인생속에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그릇을 뜻하는 것이다. 나는 실제 나의 경험속에서 수많은 직종을 경험하였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흔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런 사람조차도 이해하려고 치자면 어렵지 않다. 단지 마음을 쓰지 않을 뿐이다.
한 때 나는 창조주에게 내게 왜 이렇게 많은 경험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내가 그다지 욕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성격이 완전히 삐뚤어져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유독 나만 미워하신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된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한 사람을 진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쉽게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내가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없어지면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분노할 대상이 없어지며 마음은 그래서 평화롭다. 분노, 불평, 불만, 비판은 상대에게 해가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선 나에게 해가 된다. 정신을 괴롭히고 이성을 마비시켜 객관성을 잃어버린다. 영혼을 괴롭히는 것에서 나아가 몸을 괴롭히게 되어 소화불량, 우울증, 그리고 혈압과 암까지 간다. 상대는 잠깐 불쾌하고 마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면 마음은 평안을 유지하고 나 스스로에 집중하며, 일은 더 몰입되며 확실히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 사실 나에게 억울한 일이 없지 않았다. 작은 부도가 난 것은 타인을 돕고자 한 것이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 인생에 여러 번 있었다. 갈등과 분쟁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으며, 그저 그에 동조했던 내 탓도 있었기에 책임지고 감당한 것이다.
지금도 내 방법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원망해서 되는 것은 1도 없다. 내 인생이 더 망가지는 것뿐이다. 다행히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말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에 복수를 하는 것보다 상처를 받은 자신을 보듬어 안고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되,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 사람을 끝장내는 것 밖에 없다면, 무너진 삶을 재건하는 것에 노력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렇게 살아온 근저에는 창조주의 뜻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성서에는 원수 갚은 것은 내게 있으니 라는 창조주의 말씀이 있다. 악을 이기는 것은 악이 아니다. 악을 이기는 것은 악이 아니라 선이다. 세상은 인간의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섭리라는 것이 인간위에 존재하고 있다. 나는 인생속에서 그것을 증명받았다.
상대에 대한 복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며, 오늘 난 이렇게 행복하게 인생을 맞이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복수를 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대한 나의 말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썼으나 내 필력의 한계로 당신에게 설득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에게도 반드시, 비로소, 마침내, 행복한 시간이 올 거라는 확신을 갖기를... 내가 살아보니 지금은 빛 따위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아도 그런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확실하며 그 확실한 희망을 향하여 너무 숨차게 달리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걸어가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희망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