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주는 10분

by miel




이금희 아나운서는 게스트에 대하여 리액션으로 유명하다. 다른 MC와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오직 게스트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간다. 게스트를 주인으로 만들고 이금희 아나운서는 그저 방청객 정도의 자리에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그녀의 강점은 단 한, 두, 세 글자이다. 그것은 의성어이다.


단 한 글자의 마력, 힘은 무엇일까. 우린 누구에게나 위로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말을 한다.

그러나 그 말이 그의 마음에 그의 정신에 그의 영혼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말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아~~~~ 하~~~~~~ 어휴~~~~~~~어떡해~~~~~~~~~

겨우 이 글자들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이 얼마나 가성비 최고의 상담기법인가....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게스트의 어두웠던 안면은 단 몇 분 만에 평안해지는 얼굴이 된다. 그녀와 대화속에서 누구와도 다다르지 않았던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무언가 쌓이고 멈춰서 부패되려고 하는 관념들을 발산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스토리는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를 시작한다.


도대체 이금희 아나운서는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과연 인간이 바라는 위로라는 것은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일까... 먼저 이금희 아나운서는 게스트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그의 스토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래서요? 하며 접속사를 이어주고 스토리를 이어가게 해준다. 그리고 그가 힘들었을 상황에서 그녀는 한, 두 글자를 탄식과 함께 발현한다.





나는 당신의 상황에 대하여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픕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상황을 견디셨나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제가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알 수 있겠어요.


이런 문장의 말들을 단 한, 두 글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줄임말을 모두가 다 알아듣고 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유재석님의 한 줄의 위로보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의성어 한마디가 적어도 훨씬 더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위로라는 것은 나의 인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위로라는 것은 철저히 타인이 위로를 받았을 때 그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나의 고통에 함께 아파해준다는 것. 아주 잠깐 10분만이라도 가슴 깊이 아파해준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위로를 받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상황을 내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들었을 때 이런 반응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럼으로써 그의 고통은 타인과 공유되어 가벼워지는 신기한 느낌을 받게 되며, 의지가 되어 그 마음속에 어떤 희망이 들어올 틈이 생겨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상대와 함께 있는 동안에 단 10분만이라도 나라는 존재를 잊고 상대의 상황이 나의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대화에 몰입했을때 일어나는 반전인것이다.






나 역시 그 위로에 깜짝 놀랄 정도의 회복이 되었던 신기한 기억이 있다.

세상을 살면서 위로가 필요 없는 닐들은 얼마나 될까. 경쟁시대에서 우리는 항상 자신의 최고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투여한다. 그리고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시간이 찾아오면 지치는 몸과 마음을 가누며 돌아오는 우리에게 누구나 필요한 것은 위로인 것이다.


지금은 위로의 시대. 열심히 일하지만 대가를 얻기가 쉽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성취의 기쁨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처럼 너무나 아득한 시대이다. 그 어느 시대보다 우리는 개인화되어 있으며 공동체를 위하여 웃음으로 의기소침한 마음을 내보일 시간도 사람도 없다. 그저 계속 자기 자신의 힘든 상태에서 조차 위로는 커녕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고 있지는 않는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는 이 현대인의 사회 속에서 위로라는 것은 알지 못하는 미래에 꿈에 대하여 우리가 견디게 하는 힘, 에너지, 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선 지금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가장 많이 위로 해 주어야 하는 상대는 바로 당연하게 나 자신이어야 한다. 성년이 되면 노동을 하며 살아 가야 하는, 고귀한 영혼을 소유한 사유의 소우주를 가진 존재. 인간은 독보적으로 단일한 존재다. 당신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하므로 위로는 인간이 가진 아주 귀중하며 가장 큰 특권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만큼이나 인간이 진짜 행복해지는 방법도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단 10분이라도 누군가의 위로자가 되기를 나에게 주문한다. 타인에게 주는 단 10분을 다짐한다.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거창한 어떤 문장이 아니었다고 그저 나를 위해 탄식하고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어느 누구의 의성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