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좀 고장 난 것 같은 겨울이야

by miel





겨울을 탄다는 것인가. 마음을 감정이 주도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계절 탓인가. 아홉이라는 나이 탓일까. 이제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뜻일까...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 제대로 보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내 편이고 내 관점이다.

나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람에겐 타인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회사에서도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조절하며 가고 있었었다. 회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마치고 돌아와 감정적인 모습을 더욱 보이지 않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존경하는 리더가 나로 인해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무엇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좋은 관계가 조금은 거리가 멀어질 것 같은 두려움인가... 나의 솔직한 본 모습을 보고 실망했을 거란 짐작으로 인한 다운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나 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실망할까봐 걱정하는 두려움인가. 이것은 트라우마인가. 누구라도 이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일까. 리더가 내면적으로 불편해하는 것에 대한 상상을 했다. 때로 생각은 순간적으로 너무나 멀리 상상을 해버리고는 너무나 멀리 가버려서 방황을 하고는 한다. 이성과 감성이 서로 생각의 주도권 이 되고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역시 이세상과 어울리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람들 누구도 사회생활은 버거울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더이상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될 때에 귀농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말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우울감은 맞다고 생각했는데, 리더와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느낌이 보다 정확하다. 그렇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다. 원인이 파악되고 대안이 생기면 조금은 사그라든다. 어쩌면 우울감은 문제를 고치라는 내 마음의 신호 일때도 있다.





감성에 감정에 너무나 솔직했었던 것이다. 너무나 편안하게 일했었다... 편하다고 배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관계였어도 거리 조절이 되었어야 했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철칙이다. 감정은 순간적으로 이 법칙을 넘어서기 일쑤이다. 회사에서 감정을 조절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반성하고 반성한다.


계약을 진행할 때는 극도의 긴장감이 올라온다. 감정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왜냐하면 실적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상품 컨셉에 대한 방향, 말 한마디, 억양 혹은 클라이언트의 심리, 환경 등등 몇 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일이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맞추려 하다 보면 집중과 몰입 뿐만 아니라 극도의 긴장감이 형성된다. 아마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시험해 본 결과에 의하면 마음을 비우고 일을 진행하면 충분히 느긋할 수 있다. 일은 자연스럽게 클라이언트와 속도를 맞추며 진행된다. 물론 더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때에도 평정심은 인격을 지킬 것이며, 회사의 분위기는 평화로울 것이다. 아직 그 경지에 제대로 가지 못한 것이다. 물론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저 자연스럽게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먼저 감정을 조절해야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속에서 감정을 비롯한 감성을 표현할 수 없기에 글을 쓰는 거였었다. 그런데 역전이가 일어난 것이다. 인생을 나답게 살자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만나게 되다 보니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성향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다. 비로소 나답게 사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으나 회사에서는 솔직하게 산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좋은 인간관계에서도 똑같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회사에서는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삶의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울까... 이틀을 휴가를 간다는 것이 이렇게도 죄책감을 가질 일인가... 아니다.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아주 개인주의적으로 이틀정도는 여행 간다는 것에 기뻐해도 된다. 내가 여행을 가는 것이 큰 잘못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뭔가 큰 잘못을 한 느낌이 든다.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아주 오랜만에 여유로 인한 여행이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경험을 하고 틀안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다른 세상을 직접 보상해주고 싶었다. 열심히 살았으나 모았던 돈을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모두 사라지고 빚을 져야 했던 나에게 나만큼은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여행을 간다는 것은 성실하지 않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주일에 교회를 가는 시간 때문에 평일에 여행을 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회사에 이토록 과하게 눈치를 보는가. 어쩌면 이것은 휴식하지 못하게 관념이 붙잡고 있는 것이다. 회사들을 위해 내가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가. 나는 이 부분의 관념의 틀을 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향유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한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생을 돌아보고 싶다. 인생 안에서 내 인생을 둘러보기가 어렵다. 뭔가 감정이 고장 난 것 같은 기분이다. 멀리에서 일상을 보면 인생이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안다.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내가 세상을 이만큼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신앙을 모른 척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이 없었더라면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망가졌을 것이다.


아직도 감정적인 영역에 대하여 제대로는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것을 감지한다. 글을 쓰게 되면서 더욱 감성적으로 변하였을까. 아마도 그러하였으리라. 주어진 숙제는 글을 쓰면서 감성이 더욱 예민해지는 것에 대하여 감정관리를 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정신적인 영역을 움직이는 것이다. 가벼운 글쓰기 같지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닌것을 느낀다. 글을 창작하면서 인생도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더더욱 이 겨울에 유난히 감성지수가 높아진다. 춥다는 것 자체가 주는 움츠림과 감성은 아마도 어떤 연관이 있는 듯하다. 겨울은 나에게 쉽지 않은 계절이다. 너무 이성적이었던 지난 시간에 비하면 그토록 영감을 받고 싶었던 시간이 온 것도 맞다. 이 계절을 충분히 감성에 젖어 지내기로 한다. 어쩌면 감성적인 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것이 성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 설렘도 오랜만이다. 인간은 자유를 끊임없이 갈망한다. 아주 최상의 삶에서 조차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야생적이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10년은 처절하게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쉬고 싶은 생각이고, 회사가 비수기이고, 내게 여유롭게 시간이 주어질때, 재충전하며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은 생각이다.






뭔가 다른 장소에서 내년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고 싶다. 거의 십년만에 생긴 낯선 마음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긴 호흡을 갖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고, 물론 이 생각조차 삶이 안정이 되었기에 사색의 시간이 가능하다. 일이 잘되건 잘되지 않건 간에 한 달 한 달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이년 십 년 이십 년 이곳이 마지막 직장이 될 수 있도록 계획하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롱런할 수 있는 긴 호흡이 필요하고, 사십대의 인생을 평가하고,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마무리작업이 필요하다는 직감이다.


또한 내가 출간을 할 수 있건 없건 그건 내 소관은 아니다. 그저 대중성을 갖는 실력을 갖춘 출간을 목표로 노력하며 글을 쓸 것인가. 자기만족의 글을 쓰며 즐기며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을 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반복된 고된 작업속에서, 출간이 일정 정도의 판매부수로 이어질 만큼 독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갈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 노력의 결과는 신에게 맡기는 것이고 말이다.을 고독으로 들어갈 것인가 즐길 것 인가의 고뇌이다. 즐기며 살자고 했지만 영혼은 자꾸 내 옷을 잡아 끌고 있다.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이 물음표를 간헐적으로 넛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문제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뭔가에 대한 것이며, 결과에 상관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고, 불가능 해 보이지는 않기에 두 가지를 길을 고민하게 된다. 자꾸 결정되고 끝난 결론이 수면위로 떠오르면 재고해 봐야 한다. 잘못된 결정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좌표를 수정하는 것이기에 가볍지는 않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대충 내키는 데로 흘러가서는 안 되는 사안 인 것이다. 모든 일상생활을 멈추고 완전히 자연인이 되어 삶을 충분히 깊게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 겨울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