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한 스토리를 마무리하고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한 챕터를 끝내고 다른 챕터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4에서 5로 첫 글자가 바뀌며 5라는 숫자가 주는 반이라는 의미는 이전의 12월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유별난 나의 12월의 의식은 그렇게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가고 있다. 잘 지내왔는가...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하여 잘 항해하며 왔는가... 아쉬움은 없는가... 미련은 없는가... 후회는 없는가... 이런저런 생각에 더욱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다이나믹하게 아주 많이 변하며 지내왔다. 사람을 항상 그리워하여 서울에 살던 막내 동생집에 수시로 들락거렸으며, 연애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혼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내가 되어버렸다. 나를 들여다보는 일과 묵상하는 일이 나에게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바뀌어있다.
그것은 무게중심이 외부에서 내부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내속에는 내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낀다. 감정의 파동도 심하지만 여러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무한 긍정으로 사람들과 대하는 나와, 한 없이 침잠해 끝없이 들어가는 감성의 나와, 인생의 의미를 갖지 않고 견디지 못하는 나와,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하여 참는 것을 가장 힘들어하는 나와, 로맨틱 코미디나 정의로운 드라마를 즐겨보며 히히히 웃으며 게으름의 극치를 갖고 토요일을 즐기기도 한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자신의 부족한 문제가 없는지 늘 자주 검열한다. 검열하다가 에잇! 다시 놔버린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는 것인데 반성을 하는 것이 너무 자주이며,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가 심한 것도 있다고 반성한다. 인생이란 것에 인간이라는 것의 성향과 삶의 법칙들을 너무 많은 것을 생각에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신이 내게 주신 자산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렇게 변해버린 지금의 나, 만족한다. 어찌 보면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쯤이면 인생을 잘 살아오고 있다는 판단을 하곤 한다. 연말답게 후하게 점수를 주자면 지금 이대로 가자고 생각하게 된다. 교회에서의 활동도, 직장에서의 포지션도, 글을 쓰는 나의 마음가짐도 모든 것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균형을 이루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방황과 변화가 있었다. 어찌 보면 인생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중심들을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떤 것도 나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가 나의 원칙이다. 어떤 것에도 형식적이어서는 의미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주일교사 봉사는 충분히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하고, 직장의 일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삶이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으로 진행하고 있다. 나에게 직장은 성공을 위한 곳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곳의 의미이다. 만약 그 선을 넘어 버리면 교회의 기쁨도, 글의 기쁨도 위협을 받게 된다. 또한 글쓰기 역시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나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내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다. 나는 혼자서 충천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체력이 좋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포기라는 것을 많이 한다. 내가 살고 싶었던 지금의 이런 삶은 가정이 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체력이 약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체력은 육체적인 힘도 힘이지만 정신적인 힘도 포함한다. 늘 본질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는 인간형인 나는 만들어놓은 라이프사이클 외에 더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철저히 고민하여 넣고 빼고를 하며 힘을 분산하고 분배하며 가는 것이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게 모르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의 인생은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나이가 든다는 것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세상을 알게 되고 인간관계의 법칙을 알게 되며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자신의 관점을 형성해가며 이른바 세계관과 자기 철학을 만들어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을 인생에 투영시켜 자기화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들의 청춘은 방황과 실패와 후회의 시기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청춘은 고달프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라는 가사를 공감하고 좋아하며 자주 불렀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속에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아마도 예술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숙명 같은 노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스스로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내 주위에 예술가들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문창과나국문학과 혹은 철학과를 갔으면, 인류학과를 갔으면 이런 고립감이 덜했을까를 생각해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만의 작업이다.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혼자만의 결론들을 풀어내는 시간들이다. 오히려 고독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같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혼자 지독히 이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따로이지만 같이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나처럼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나의 삶을 즐긴다. 아무도 모르는 무명이라도 나에게 나는 예술가이며 나에게 나는 최고이며 나에게 나는 귀한 손님이다.
내년에는 이 삶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더 깊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고, 글을 더 깊게 쓰고 싶다. 아마도 인생은 더 넓고 깊은 곳으로 나를 인도할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더 깊게 안도하며 나의 불안한 영혼을 한 줌 한 줌 걷어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고통이 줄어드는 일이며 더 지혜로워지는 일이며 성숙해지는 일이며 더욱 훌륭해지는 일이며 깊어지는 일이다. 몇 번 썼지만 나는 내년을 기대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내가 더 가까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