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열망사이

제주여행이 내게 준 것들에 대하여

by miel






결항.

내일 오후는 갈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모래는 갈 수 있는 것일까.

세 번째 날부터는 내일의 모든 상황의 수를 다 고려하고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탄절 전야제와 예배에 사고가 발생한다. 주일교사분들이 나의 증발로 낯선 일을 대신해야 하는 문제로 멘붕이 오게 될 것이다. 내 일을 다른 이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그동안 신앙생활에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십 년 만에 여행이라는 것은 그동안 여행을 갈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이 모두 되지 않았을 뿐더러 마음에 여유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다지 여행을 좋아하는 성향은 아니라는 것이었는데, 직장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이제 오십이라는 나이를 갖기에 한 달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여행을 염원하게 하였다.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살기 위해 너무나 수고하고 애쓴 나에게 보상이란 것을 해주고 싶었다.


사실 여행을 오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작가에 대한 방향설정이었고, 두 번째는 오십이라는 나이가 오기 전에 살아 온 인생들을 돌아보고 정리해보고 싶은 정서적 이유였다. 물론 그날그날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어떤 방향으로 내가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음은 내내 불안하고 조급하고 위험하였다. 그 상황에서 삶을 객관화 시켜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런로 십 년이 지나버린 것이었다. 십 년 전에 실패라는 사건을 겪고, 그 사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또 다른 성향으로 다른 삶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우선 욕심을 버리고, 미움을 없애고, 화를 내지 않고 등등으로 변화해 갔다. 물론 의지뿐만 아니라 주어진 삶이 그것들을 버릴 수밖에 없게 하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똑같은 실수를 조금씩 줄여가는 것이니 말이다.


또한 결혼을 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혼자 살기 위한 마음의 준비와 그에 맞는 삶의 방식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홀로 살아가는 것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하여 쓸 수 있다는 장점을 받아들이고, 홀로 충분한 작은 아파트를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막연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을 위한 노력과 결혼을 해서 행복할 수 있는 확률보다, 혼자 하고 싶은 일을 이루며 가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치열한 계산의 결론이 된 것이다. 아무리 낭만적인 나에게도 현실이라는 삶은, 계산적이지 않으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이였다.


유난하게도 직장은 제대로 자리를 안정이 되지 않고 계속 방황을 하면서 지내왔다.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난히 힘든 직장이 나에게 닥쳐오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고, 실패와 더불어 직장의 불안정까지 자존감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아마도 실패로 인한 좌절 속에서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아파트에 당첨이 되고 나서 재정이 아주 조금씩 안정이 되기 시작하면서 마음도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모든 감성과 이상은 현실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현실이 안정되지 않으면 감성과 이상은 이성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삐뚤어지고 왜곡되어진 배부른 소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낭만은 최소한의 생계 안정 속에서 가능하며, 즐김은 그로 인한 마음의 평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신은 내게 마약이나 마취제가 아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이기게 하고 견디게 하는 힘 그 자체였다. 신은 내게 밥을 떠먹여 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인격을 만드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을 가리라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퇴근을 하고 제주도 밤비행기에 올랐다.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컵라면에 맥주를 마시면서 창밖에 제주도의 흐릿한 풍경을 바라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뭔가 정말로 낯설고 이상한 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방향설정이 중요했다. 시작부터 헤맬 수는 없었다. 특히 나의 성향은 어중간하고 정해지지 않는 상태를 곤혹스러워했다. 고민이 힘들더라도 결국은 어떤 결정을 반드시 해야만 하고, 확정된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했다. 고뇌의 요점은 무엇인가.






작가가 되고 싶지만, 무엇도 아닌 세상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열정도, 상황도 체력도 안된다는 것을 얼마 전 확인하였다. 적당히 노력해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들을 분야별로 읽어가며 데이터화 하고 작가의 삶 속에서 통찰한 것들 속에서 시대에 맞는 글을 쓰고 대안을 제시도 하며 살아가는 꿈을 꾸었으나, 직장에 다니면서 그렇게 작업을 하기에 내가 너무 나약하다는 결론이 났다. 오십이 되기 전의 심리적 방황은 작가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상황을 인식하자 조용한 절망감이 둔탁하게 오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향은 누구보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감수성이 넘친다는 문제였다. 감수성이 넘친다는 것은 사람들과 모든 감수성을 교감할 수 없고 특히 나의 혼삶에서는 더욱 그러하기에 글을 써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글을 쓰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즐기면서 글을 쓰고 자족하기 위한 출간이 나에게는 왜 가치를 갖지 못하는 걸까. 가치를 갖지 못하기에 방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술성을 인정받는 작가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인생에게의 통보는, 인생의 개인적 의미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임에도 작가 말고 다른 어떤 것에도 개인으로써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둘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출간하기 위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기를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 너무 버거운 것이다.


이것은 욕심인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이렇게 크게 자리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나에게 주신 달란트인 것일까. 더 이상 욕망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또한 그에 순응하며 욕망을 없애기 위하여 애쓰며 살아왔고, 청지기적인 삶의 방식 속에 난데없이 내 열망의 민낯이 이러한 욕망인 줄 알게 되자 그동안의 노력이 한없이 초라하고 사방이 벽에 부딪혀 있는 느낌이었다.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절망이 일었다.






다른 사람에게 작가로 인정받고 싶은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원인인가... 외적인 인정욕구는 주로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열등감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열등감이 나를 인정하지 못해서 그 공허감을 외부를 통해서라도 안정받고 싶은 것이다. 아 언제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열등감의 해결방법은 스스로를 인정해주는 것이며 세상의 기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 역시 사실 비객관적이다. 극히 상대적이므로 세상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게 다반사다. 그저 나는 노력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더욱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낙관하는 마음이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열등감을 사라지게 하면 인정욕구는 사라지는 것일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없앨 수 있는 것이긴 하는 것인가. 여기까지가 첫째 날의 결론이 되었다.

그 이상은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생각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두 번째날 지인도 제주에 갇혔다는 연락이 왔다. 심상치 않았다. 3일째는 너무나도 진지해져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이고 그 일을 누구에게 부탁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질 여파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이 시간을 즐겨야 한다. 인생에서 내게 주어진 오늘은, 내가 정한 목적대로 살지 않으면 후회라는 것이 몰려온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없다. 단지 커다란 후회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가는 것이다.


즐기는 것도, 낭만적이고자 하는 것도, 현실의 삶에 반하는 정체성이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것에 철저히 순응해야 하지만 또한 철저히 불복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모든 게 욕심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후회되지 않도록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즐기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였다.


첫날 바다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나로서 제주바다는 최고였고, 요트는 더욱 낭만적이었기에 첫날은 사실 내일도 모레도 결항이 되리라 생각지 않았기에 즐기기에 아무 제약이 없었다.





고민을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본질은, 훌륭한 인격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간은 인간을 고독하고 힘들게 한다. 모두가 동의하고 인정하는 통찰이라는 어떤 인문학적 진리를 꿰뚫는 차원의 단계까지 다다르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인간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그 인간은 과연 선한 것인가...


인간은 인정받지 않으면 왜 인생을 견디기가 힘든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절대로 인정받고 싶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산속으로 들어가 어느 영역에 대하여 가장 높은 차원의 단계로 오르고 죽어간 이들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유배지에서도 책을 썼던 이들은 자신들의 책이 인정을 받는 것과 무관하게 책을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자, 그렇게 살다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내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뭔가 유의미한 가치인 선한 영향력이 되고 싶은 것이다. 특별하게 어떤 관계가 없는 혼삶주의자인 내게 유독 강한 열망인 것 인 것도 같다. 특별한 관계가 없는 자의 보상심리라고 할까...






그리하면 신께 여쭈어야 한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열망을 없애고 순수한 자연의 마음으로 회복될 수 있는가를 말이다. 그저 글을 즐기며 살아가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욕망이 열망이기도 한 이 꿈을 포기하면 십 년 후에 더 후회스러워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고 예술성을 가진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 꿈은 향상성의 본능을 갖은 인간에게 신이 요구하는 훌륭한 인격으로 가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나의 미래는 감히 나조차도 재단할 권리는 없으며 아주 근소하고 얇은 차이이지만 꿈 자체가, 예술가가 되려는 욕망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단지 출간과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나를 악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무엇이든 그렇다. 한 단어가 악한 것만 있는 것은 흔치 않다. 또한 선한 단어가 악해져 버린 것도 많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떠한가, 사랑이 상품화되고 사랑이 가벼워지니 또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욕망을 채우려고 하니 이제는 '진정한'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면 그 사랑이 본질의 가치를 갖지 못하기도 한다.



악한 것은 성공 그것을 위한 불법과 편법, 개인만을 위한 영달일 것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이념과 모든 종교의 교리인 사랑은 개인의 노력으로 혼자 이익을 취하는 것에 대하여, 더 많이 소유한 자의 베풂을 말한다. 지식인의 도리, 세상을 아는 자의 실천일 것이다.






그렇게 욕망한다면 그것은 열망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리하여 나의 고뇌는 마지막날 이렇게 매듭을 지었다. 2023년부터는 방황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하여 이렇게 깊게 고민하고 고민하였다. 다시는 되돌이표로 고민하여 정체되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나 스스로는 인정을 하고, 너무 지쳐버릴 만큼의 노력을 하지 말고, 마라톤처럼 노력하며 가기로 결정한다. 이 길이 가장 후회를 적게 할 수 있는 길이다고 말이다.


여행 중 결항소식으로 많은 문제를 고민했지만 여행이 끝나는 날 아침 기적처럼 비행기는 운행하여 예정대로 교회일정을 잘 진행하였고, 그 일을 나 대신 누군가가 아닌 내가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경험하였다. 40대 마지막날들에 나에게로 떠난 제주도는, 강하고 거친 인생 같은 파도 속에서 평생동안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위력의 바람과 파도를 경험하였고,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되어 주었다.


내게 조금은 있는 것 같은 인정욕구는 앞으로의 없애야 할 숙제이다. 나는 이제 겨우 인생의 반을 지나왔을 뿐이다. 고뇌의 끝에 매듭 지은 여행은 나의 인생처럼 어렵게 진행된 여행의 성과를 이루었다. 폭설로 결항된 제주도 40대의 마지막 정리 여행은 내내 잊을 수 없는 인생여행으로 저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