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에 40년을 휘둘리며 살아온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혼돈속에 엄청난 정신적 방황이 있었지만 결국 보이는 것에게 휘둘리며 살아왔다. 보이는 것들로 망가져버린 인생을 통해 40세 이후부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들여다 보았던 것 같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 세상의 메커니즘의 대해서 , 그리고 그런 세상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제로는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을 볼 때 우리는 흔히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모순에 부딪히게 되는 경우는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이고, 그전에는 먼저 자아를 느끼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감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전제 조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 외에 무엇이 있을까.
공기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 위에 우주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우리 몸의 원자뿐만 아니라 세포조차 보이지 않으며 타인의 마음 역시 보이지 않는다. 만약 보였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신비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더이상 감성이라는 것이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것의 정보로 지금보다 더 정신없이 살았을 것이다.
보이는 것은 우리가 늘상 생각하는 것들이다. 수입과 재산과 언어가 들리고 인식되니 보인다고 할 수 있고, 표현하는 모든 것이 보인다. 인간을 압도하는 건물들... 산세와 강과 바다 화려한 도시숲에 인간은 한낮 2m도 안 되는 생명체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지구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있고 우주를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
바다 깊숙한 곳을 정복하고 우주 멀리에까지 블랙홀과 수많은 은하계들을 파악하고 그 물질들의 성질을 파악하여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밝혀가고 있다. 과학 또한 지구의 모든 것들을 밝혀내고, 인간의 내부의 신체부터 내면의 심리와 뇌과학까지 모든 무지에서 앎으로 보이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물질들 속에서 살아가는 한 부류의 인간이 깊은 내면에 까지 다다르며 신학과 철학과 인문학의 한 경지에 다다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어진 인생에 의식주와 보이는 것들을 채우며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성인, 예술인의 역할이란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없는 것들 속에 본질을 놓치지 않는 영향을 끼치는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지 않을까 말이다.
인간은 왜 태어난 것일까. [이기적 유전자]처럼 인류의 종족번식을 위해 태어난 것이, 종족번식의 목적은 인간의 중요한 숙제일 수 있지만 정체성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내가 네가 아니고 네가 내가 아닌 특별하고 고유한 생명의 독립적인 존재성이다. 그것의 발현으로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사적인 선택의 기준은 사랑도 우정도 결혼도 인간의 소중한 인생의 결정에는 그 어느것도 계산과 물질이 기준이 되지 않는다. 특별한 부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인간이 선택하는 기준은 자신과의 마음의 합의이다. 공유되고 합의되기도 하며 통하기도 하고 서로의 의사표현을 이해하는 관계에서 사람은 마음을 주기로 한다.
우리에게 관계는 크게 두 가지고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관계이다. 사회적 관계는 공적관계이며 생계 혹은 부의 축적을 위한 목적을 가진 관계이다. 사적인 관계는 혈연과 마음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인간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는 관계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관계이며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의 기쁨과 행복이 이루어진다.
물론 공적인 관계에서도 자아실현과 성취감이란 사적인 영역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이 단발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기쁨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행복감은 유대감에서 이루어지는 데 죽음 외에는 관계가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편안함 속에 이루어지는 안정감이다. 인간은 그 유대감을 갖기 위해서 성인이 되어 사회적으로 독립적 인간이 되면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는 결혼만큼의 깊이 있는 관계를 갖지는 못하더라도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결혼을 하여 갖게 되는 수많은 개인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실은 현명한 과업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물질계적 관점의 보이는 것으로 계산하면, 결혼이라는 제도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무조건적 헌신구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기쁨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라는 증거이다. 인간은 손해를 보고서라도 마음의 충족이 이루어지면 감내한다. 인간은 희생과 헌신을 해서라도 사랑을 지켜나가는 존재이다.
보이는 것에 휘둘리지 않기 위하여 최대한 생계 영역에 더 이상 지분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생계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기본이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계만을 위한 삶이 얼마나 허무하게 하고 초라하게 하며, 휘둘리게 하고 끝없는 욕망으로 나를 어느새 몰아넣는지를 너무 많이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생계가 자신의 정체성인 경우는 예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한다. 내 마음의 상태을 파악하기 위해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시간은 사람을 깊어지게 한다. 깊어지지 않는 것이 왜 위험할까...도움이라는 것도 배려라는 것도 자기중심적 배려나 도움은 상대에게 오히려 마음의 상처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인생을 알면 알수록 인생에 알아야 할 깊이에 대해서 깜작 놀라곤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무한한 우주처럼 그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듦에 따라 경험이 쌓이고 연륜이 생기면서, 삶에 노하우가 생기고 실수가 줄어들기도 하며 이른바 센스라는 것이 장착되기도 한다. 또한 여유가 생기기도 하여 인생을 즐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이 기분은 청춘이라는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게 한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데몬스트레이션을 하여 폭력으로 대응했다면, 이제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지켜야할 예의와 원칙에 대하여 합의하거나 제안한다. 그것이 더 뛰어난 실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싸움과 어긋남이 아닌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서로가 살아가면서 이루어 가야 할 어쩔 수 없는 인간관계의 숙명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자 그럴 만한 충분한 말과 행동의 이유가 있다. 단지 우리가 서로 함께 공유, 공존하기 위해서 합의는 필요한 것이다. 단지 상대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우리는 타인의 입장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먼저이다. 이런 마음은 아마도 나이가 주는 연륜이라고 생각한다. 젊음은 자신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이이며, 타인을 헤아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돌아보면 그렇게 생각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것이 좋은 것이다. 성숙한 인격, 성숙한 문화, 성숙한 삶을 동경하며 그런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살아간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헌신 그 이름없는 꽃들의 향연속에서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숭고해지며 아름다워지고 거룩한 차원으로 나아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심안을 가진 자는 얼마나 멋진 인간인가. 신중하고 신중하게 사람을 들여다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고 쉽지 말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누구도 그렇게 대할 만한 작은 가치를 가진 인간은 없다. 내가 악해지기도 할때가 있는 것처럼 때로 타인이 어느 순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가치는 인간이 얼마나 훌륭해질 수 있는 품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이다.
인간은 훌륭해지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보이지도 않는 내면의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글을 쓰는 목적이 순수하고 싶어 고민하며.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이유도, 하루 남은 연말을 되돌아보고 계획을 세우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밥을 맛있는 것으로 먹고 싶거나, 좋은 집에서 자고 싶거나, 노후연금을 받고 싶은 이유만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생계를 위한 이유에 모든 인생을 걸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보이지 않는 것도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보이는 것을 소홀히 해서라도 보이지 않는 것에 비율을 훨씬 더 주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자아의 정체성이 세상의 삶과 일치될때, 인간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할때 행복은 이루어진다. 행복은 결코 없지않다. 단지 우리가 헹복으로 가는 길을 잘 못 알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