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었던 우울의 파동

by miel






이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는 지난달부터 서서히 나비효과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이의 앞자리가 4에서 5로 시작한다는 것에서 먼저 나의 이성이 움직였다. 생각 해 보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후회 없는 계획을 세워보자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을 가서 작가로서의 길을 고민하고 적정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고 별 문제없었다. 그러나 23년이 들어온 날부터 불안이 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로 한 단계 나의 고민의 심각성이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의 특별한 혼삶이 자유로웠던 이 삶이, 결핍과 비정상의 삶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분명히 내 관점과 시선이 지금 잘못되었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으나 감정은 삐뚤어진 상태에서 목에 걸린 가시처럼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주위에 충분히 깊은 유대감을 갖은 관계를 형성하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혼삶의 방식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위에 모든 인간관계가 갑자기 경직되기 시작하였고 쉴 새 없이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바로 나의 삶의 방식의 특성이었다.






인류의 기본단위는 가정이다. 가장 특별하고 친밀하며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경쟁구조 속에서 그 시름을 달래며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곳이며, 내 주위의 지인들은 그 관계 속에서 사회에 나와서 자신의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살고 있었던 것이고, 나는 아무 충전소 없는 사회생활만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꼭 이 관계를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족이라는 단위가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뼈저리게 온몸으로 경험하였으며, 이 사건은 나의 가치관을 전면 수정하게 하였다. 인간은 반드시 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남들 다 있는 짝도 없다고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의 비운을 절망하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홀로 온전하기를 꿈꾸며 완전히 닫았던 이성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 수밖에 없기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신앙인인 나는 신이 나의 마음을 바꾸고 있다는 직감을 하였다.


이성교제를 위해 내가 부족했던 조건, 환경, 마인드, 성실함 등등을 돌아보며 그 문제에 대한 대안과 계획을 현실에 맞게 세웠다. 그렇게 했는 데도 여전히 우울함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성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을 80세에 낳은것처럼, 우리를 설계하신 창조주께서 못하실 일이란 없다. 언제라도 그분의 계획이라면 인연을 만날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 고통스러운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글을 쓰기도 어려울 정도의 우울감이 심각하게 느껴져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아무래도 정신과를 방문해야겠다고 하고 있었다. 너튜브의 알고리즘이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 동영상으로 인도하였다.


김주환 교수님은 우울증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굉장히 잘못되고 위험한 방식을 지적하였다. 우울증은 질병이며 그 치료를 일반 질병과 똑같이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암이 진단되면 자신을 보호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고, 몸에 좋은 음식만 선별하여 먹는다.






그런데 우울증은 유독 자신을 채찍질하여 병든 몸을 더욱 병들게 해 버린 다는 것이다.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고, 자신을 원망하고, 자신을 한심해하고, 열등감으로 가득 차서 자신을 학대하며 극단적으로 고의적 자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차 싶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병에서 나아지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병들게 하고 있기때문이다. 조건이 현재 우울하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면 스스로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영화와 좋은 음악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고방식을 전환시켜 주기 위해 애를 썼어야 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불만이 가득한 욕심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울증은 무조건 자신을 비호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자신을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아무것도 의미 없다. 도덕도 윤리도 자신을 먼저 온전하게 해 주고 그 후에 충분히 수습을 해도 늦지 않으며, 먼저 진정으로 진정으로 자신을 마음 깊이 안아주고 이해해 주었을때 그 때여야만 마음이 풀리는 것이었다. 나는 내안에 진정한 자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시간 속에서 나는 이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은 다른 사람을 한 뼘 더 이해하는 계기가 열리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밑도 끝도 없이 인과율의 법칙과 무관하게 우울한 날들이 오기 마련이다. 좋았고 감사한 모든 것들이, 답답하고 아직도 여기밖에 오지 못했다고 한심하게 여겨지는 시간들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왜?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그대로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것. 그러나 그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는 진짜 내 힘을 이 과정을 통해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회복탄력성과 내면은 좀 더 두꺼워진 것도 같으며 어느 순간 배가 고팠고, 입맛이 돌아왔으며, 모든 것이 아프지 않은 시간이 돌아왔다. 인간의 지각으로 어떤 무엇이 더 변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더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나의 짝을 만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며, 희망으로 다시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 진통이 필요한 것들이 있다. 마음 먹은데로 바뀌는 쉬운것만은 아니다 마음이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