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직장에 입사했을 때의 기준은 인간관계였다. 내가 살아온 시간 중에 가장 좋은 인간관계를 찾아갔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현실이라는 직장 속에서는 순수할 수 없는 맹점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관리자와 직원은 결코 일치되지 못하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라는 것을 순진하게도 애정의 배고픔에 잊고 있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것은 좀 더 이성적으로 변해있다는 것이다. 생계가 걸린 사회에서는 감정적일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실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어 너무나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빼고 이성적으로 신중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
현재의 회사는 더욱 실적 우선주의로 가고 있고 아직 실력이 온전하지 못한 나는 차별된 대우를 받고 있다. 그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며 실적이 더욱 떨어지는 현상을 일반적으로 가져온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서 무작정 충동적으로 직장을 때려치웠다가는 결국 내가 손해 본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변해버린 체계로 한 달이 다 되어가고 그 체계에 맞춰 이전보다 몇십 배는 노력이란 것을 하였고,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결국 전화상담기술이라는 것은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실력은 늘지 않았고, 장기간의 실력이 늘기까지 기다리기에 매주 실적을 맞춰야 하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평화롭던 직장생활을 정말 출근하기 싫은 곳으로 변해버렸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또다시 겨우 여기에 안정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렇게 시련을 주시고 또한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주시는 하나님이 야속했다. 어제 삼십 년은 된 인연에게서 카톡이 왔다. 새로 바꾼 프로필을 보고 동감이라며 보낸 문자인데 나는 이 다섯 살이나 어린 그러나 성숙한 친구에게 연락이 하고 싶어졌다. 이 친구는 나에게 다른 관점을 제시하였다.
더 좋은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내게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작가로 방향을 가져가라고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 취미이상 다른 근본적으로 진지하게 작가로서의 길을 모색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적극적이지 않고 수동적으로만 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중심이 영성인 것처럼 일상이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만 맞는 방향으로 삶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30년 아니 20년 일수도 있다. 이생을 살아가는 동안 큰돈을 벌 수 있는 그래서 당분간 꿈을 접어야 하는 객관적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직장생활은 어디서 하건 또 똑같이 스트레스를 극심히 받든 지, 과도한 육체적 노동으로 몸이 힘들든지 어느 쪽으로든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전업작가로 아예 가지 못할 바엔 말이다. 막연히 갖고 있던 방향성이 이번 고통으로 더욱 명확하게 바뀌어졌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텔레마케터는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텔레마케터라는 세일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흔치는 않지만 정말 고능률자들은 처음부터 실적이 좋다는 것이 지켜본 자의 결론이다. 타고나게 말을 잘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아하는 글을 쓰며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거기에 나는 외향형이 아니라 내향형 인간이라는 것도 말이다. 정말 우습게도 자신이 자신을 기만하기도 하기 때문에 외향성과 내향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향형 인간이었다는 것을 50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차라리 잘됐다. 만약 직장생활이 그럭저럭 할만했다면 글을 취미로 쓰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전업작가로서 살아가야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는 깊은 고민과 시행착오 속에서 확인된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신앙이며, 나의 정체성인 작가적 삶이다.
다른 직장과 개인사는 그다음 순위라는 것이다. 직장은 생계의 문제으므로 중요한 부분이지만 과도한 경쟁속에 자신을 비하하게 하고 인생의 여유보다 실적으로 인생을 채우게 된다. 물론 패배자의 논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내 입장은 그러므로 승자에게 그 자리를 주고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단 백만원을 벌더라도 말이다. 덕업일치의 예외자의 입장이다.
개인사로서는 연인이나 배우자 자녀, 친구 관계인데 모든 인간관계는 자신의 삶의 중심이 세워진 상태에서 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된다. 상대의 인간관계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기중심성을 갖고 있고 그것이 인간이다. 모두가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삶속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의존형 관계는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삶의 중심이 온전히 세워진 것은 나의 생각이 진리라고 말하는 차원이 아니라 내 라이프스타일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로 모든 관계과 직장이 진행될 수 있도록 융합과 조화를 이루며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며 그 핵심이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나도 전업작가가 될 수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단지 불행한 삶에서 나다운 삶으로 전업작가로서 직업을 갖고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고 시도해 보는 것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목표라는 것은 늘 나에게 주요한 작용을 했다. 방향의 키가 되는 제목을 써서 늘 프로필의 문구처럼 매일 꿈을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행위를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이 사회가 흔드는 데로 흔들리고 비틀거리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꿈이라는 것은 꿈을 이루었을 때 감흥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한나절, 일주일...
꿈을 꿀 때 꿈은 희망을 주고 아름답고 삶을 이길 동력이 된다. 아직 부족하고 미력하지만 누구나 시작은 그러하기에 또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어떤 부류가 있을 것이기에 또 나는 노력할 것이기에 가보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잘됐다. 물러설 곳도 없이 못 먹어도 G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