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늘 새롭게 지나간 시간을 추억이나 망각으로 분류해 버리고 리셋하며 시작한다.
어쩌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아침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할 만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은 다시 의욕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단어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현실이 내가 뭔가 문제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펼치는 세상인가. 신이 내게 주는 여러 가지의 연단의 과정일까.
이 모든 상황이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을 할 때면 어느 정도 위로를 받고는 한다.
작가에게 수많은 감정과 경험과 깨달음은 글을 쓰는 요소들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작가로서 살기 위해 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삶의 수많은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방황하며 휘청이며 왔으며, 그러할수록 글들을 쓰고 싶은 욕구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끝내 이 자리에 와있다. 그것은 나에게 어느 정도의 위로다.
감성은 글 외에 현실에서는 형편없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임을 느끼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길이라는 것이고, 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물렀다.
이 변덕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아니 변덕스러움이 아니라 상황이 변덕스러운 것이고, 그 상황의 변덕스러움에 발을 맞추어 이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은 현실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가고 싶은 길을 찾아, 만나고 싶은 인연을 찾아 나가는 것이며, 그것이 가장 좋은 효과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길이 끝나면 언제나 다른 길이 나온다. 다행인 것은 반복되는 경험은 더 이상 그것에 매몰되어버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지혜를 준다는 것이다. 죽어버린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세상에는 죽어있는 삶이란 것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더 좋은 길이 언제나 나에게 왔었고, 시작은 언제나 괴롭고 힘들지만, 그것은 후회이기 보다 경험이 되었고 그리고 안목과 통찰이라는 것을 선물해 준다.
삶이 다할 때까지 끝없이 시작인 하루하루들 속에서, 큰 목적인 작가라는 꿈을 향해 간다면 오늘 어찌하든지 문제는 없다. 오늘의 난이도 상급의 고뇌와 크고 작은 경험 속에서 쌓이는 상처들의 조각들과 수많은 스쳐 지나는 인연들이 작가적 세계관의 퍼즐이 되어주겠지.
그렇다면 지금 잠깐의 멈춘 것 같은 시름도,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이다. 머물러 있든 나아가든 그것은 자유의지이니 말이다. 그리고 선택을 책임지면 그만이다.
게다가 본능적으로 우리는 선택에 대한 책임까지도 계산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은 둘 다 크게 좋지도 크게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자고 하니 내 안에 있는 어떤 강박이란 것의 껍데기가 벗겨지는 묘한 기분이 들어 시원하다.